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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이야기 | 일기 감추는 날(련재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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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리상백| 작성일 :20-02-10 16:37| 조회 :40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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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감추는 날(련재4)

4. 갈 데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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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가 몸살이 났다. 술에 취해서 아주 늦게 돌아오시더니 아침에 일어나지도 못했다. 언제나 일곱시면 출근하던 아빠였는데 내가 학교 갈 때까지 눈도 뜨지 못했다. 그래서 엄마도 동사무소에 안 나갈 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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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학교 다녀올게요.” 하고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아빠가 깊이 잠들어있다. 그래서 그냥 아빠 옆으로 갔다. 입을 조금 벌리고 곯아떨어져있는 아빠가 꼭 어린애 같다. 내가 머리를 쓰다듬는데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굉장히 피곤했나 봐.’
    아무래도 어제 일기를 잘못 쓴 것 같다. 아빠가 너무 일찍 나가고 너무 늦게 돌아와서 싫다고 썼는데. 그렇게 쓴 게 미안하다. ‘아빠는 가족보다 회사가 더 좋은가 보다.’라고 쓴 곳을 오늘 저녁에 지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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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발을 신는데 엄마가 따라나왔다.
   “기다려. 데려다 줄게.”
   “됐어요. 괜찮아.”
    나는 밖으로 나가자마자 계단을 뛰여내려갔다. 엘레베터를 기다리다 엄마한테 잡히기 싫었다. 오늘 만큼은 엄마 시간에 맞추지 않아도 된다.
    아빠트 모퉁이를 돌 때 나는 땅바닥만 보면서 가려고 했다. 되도록 울타리 쪽은 안 볼 참이였다. 그런데 그럴 수가 없었다. 아주 굉장한 형 때문이였다. 그 형은 대여섯 걸음 뒤에서 가볍게 몸을 풀더니 잽싸게 달려서 날 듯이 울타리를 넘었다.
   “와, 멋지다!”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갑자기 발바닥이 간지럽다. 아주 잠간이였지만 시큰한 발바닥 느낌이 이상야릇했다. 나도 울타리를 넘어보고 싶다. 아까 그 형처럼 두손으로 울타리를 짚고 날 듯이 뛰여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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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바로 그 때였다.
   “이 놈들! 거기 서!”
    경비아저씨가 달려오며 소리 쳤다. 그러자 울타리를 넘어간 애들이 쏜살같이 달아났다. 그 속에는 물론 경수도 끼여 있었다.
   “너희들 말야! 다쳐도 난 모른다!”
    꽁지가 빠져라 도망치는 애들한테 경비아저씨가 소리를 버럭버럭 질렀다.
    교실에 들어설 때 경수 목소리가 먼저 들렸다. 여러명이 떠들어도 내 귀에는 경수 목소리가 더 분명하게 들린다. 그게 못마땅해도 어쩔 수가 없다.
    경수는 책상에 걸터앉아서 상진이와 공 던지기를 하고 있었다. 내 자리로 가려면 걔들 사이를 지나가야 한다. 나는 다른 분단 사이로 빙 돌아서 자리로 갔다.
    가방을 여는데 뭐가 뒤통수를 쳤다. 공이였다. 순간 나는 뒤통수에 손을 대며 돌아보았다.
    고무공이라 별로 아프지는 않았다. 하지만 경수가 일부러 한 짓 같아서 기분이 몹시 나빴다.
   “아, 미안해. 아프냐?”
    상진이가 얼른 사과했다. 그러나 경수는 바닥에 떨어진 공만 주웠을 뿐이다. 나를 맞춘 애가 경수는 아닌가 보다. 그렇다고 해도 반은 책임져야 된다. 둘이 놀다가 그랬으니까. 그러나 경수는 내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비겁한 놈! 엄마 말 대로 해버릴가 보다!’
    온종일 공부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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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수랑 아무 상관도 없었던 때가 좋았다. 우리는 서로 말할 게 없는 사이였는데. 내가 워낙 조용해서 경수 눈에 띄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내 눈에는 경수만 보이고 경수 눈에도 나만 보이는 것 같다.
내 짐작은 틀리지 않았다. 교실을 나오는데 경수가 불쑥 다가왔다. 상진이와 빗자루로 장난치던 걸 그만두고 말이다.
   “리동민. 너 대진학원 다닌다며?”
    나는 못 들은 척 교실을 나왔다.
   “왜 아무 말도 안해? 대진학원 맞지?”
   “그건 왜?”
   “청소 끝나면 찾아가려고. 갈 테니까 기다려라.”
    나는 얼른 복도를 빠져나왔다.
    몸이 자꾸 무거워지는 것만 같다. 도대체 왜 나를 찾아온다는 걸가. 괴롭힐 셈인가. 때리기라도 하면 어쩌나.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힘들어도 참고 태권도를 끝까지 배울 걸 그랬다.
  ‘엄마한테 전화할가. 어른이 옆에 있으면 저도 꼼짝 못 하겠지. 그렇지만 그건 창피한 짓이야. 걔는 그것까지 놀려댈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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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래도 학원에 못 가겠다. 그렇다고 집에 갈 수도 없다. 시간이 너무 많이 남는다. 내가 다니는 학원은 모두 같은 건물에 있기 때문이다.
    나는 무작정 걸었다. 하지만 걸어도 걸어도 갈 데가 없었다.
    도서관 뜰에서 걸음이 멎었다. 마을 도서관이지만 나는 한번도 리용해본 적이 없다. 차를 타고 지나다니면서 보기만 했다.
    낯익은 녀자애들이 도서관으로 오고 있었다.
    나는 슬그머니 나무 뒤에 있는 의자로 가서 앉았다.
   ‘뭐야. 왜 숨었지?’
    나는 내가 못마땅해서 머리를 쥐여박았다. 바보처럼 굴지 말고 다른 애들처럼 책이라도 읽어야겠다. 하지만 엉덩이를 뗐다가 다시 엉거주춤 주저앉고 말았다. 수연이가 도서관에 들어가는 걸 본 것이다.
    나는 머리카락을 쥔 채 고개를 떨구며 중얼거렸다.
   “나는 바보 멍청이다.”

(다음주 월요일에 5회를 올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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