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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으로 이어지는 삶(련재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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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리상백| 작성일 :20-01-22 09:17| 조회 :40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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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으로 이어지는 삶(련재3)

김명숙 룡정시북안소학교

 

3

 

 

    새해 벽두의 종소리가 울렸다.
    그 무렵에 은사님을 배웅하는 내 서투른 글발도 드디여 마침표를 찍었다. 
    바람에 부대낀 고향집을 매흙질로 복구하듯 경황없던 삶의 틈서리 하나 메웠다고 스스로 위로를 가져본다. 가녀린 녀자애를 보내는 첫밗을 겪던 때로부터 어느덧 교사생애 36고개를 넘었다. 굽이굽이 지나온 자국마다에 지울 수 없는 얼룩의 흔적으로 오늘도 아픔은 끝없이 이어진다.

    내처 앞만 보고 쉬임없이 뛰던 그 때가 내 젊은 시절의 불타는 욕구를 위한 나날들이였다면 이제 남은 마지막 서른 일곱번째 고개에는 그 번잡함 속에서 생긴 틈서리들을 하나하나 메워가고픈 바람들로 가슴을 메워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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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을 마중하다

    얼마전까지만 하여도 나는 35년을 줄곧 버텨온 이 담임교원의 자리를 내려놓으면 내 맘속에 그들먹이 고여있던 욕망들이 보를 터뜨리듯 흘러버려 한동안 서글픔으로 바장일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번거롭고 혼잡했던 그 나날들에는 가슴이 저리도록 반추해보고 싶은 아픔들이 더 큰 비중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음을 재삼 느끼게 된다.
    탕개를 풀어버린 몸과 마음으로 방학을 보내고 처음으로 여유롭게 새학기를 맞게 되였다. 지척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푹 흐린 하늘에서 수없는 눈송이들이 날리던 그 때가 언제였던가 싶게 맑게 개인 하늘에서 구름도 내 마음을 읽은 듯 한가이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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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이면 애들 먼저 등교하느라 시간의 목을 쥐고 뛰지 않아도 되고 개학 첫날 출석조사를 하랴, 청소를 하랴, 교과서를 나누어주랴… 다투며 매달리는 일들로 신경전을 벌리지 않아도 되는데 36년간 굳어진 삶은 내 마음을 쉽게 받아주지 않았다. 출근길에 오르니 절로 발걸음이 재우쳐지고 부랴부랴 출근도장을 찍고나서 여기 저기 기웃거리며 ‘걱정도감’이 되려 한다.
    매번 개학날이면 결손가정 애들이 간혹 개학날자를 잊거나 또는 늦잠에 습관되여 제시간에 등교하지 못할 때가 있다. 그래서 뭐니뭐니 해도 개학날엔 출석조사가 우선인데… 못말리는 로파심임을 직감하고 절로 허구픈 웃음이 나온다.
   ‘다들 어련히 알아서 잘하고 있을 건데…’
    방향을 돌려 사무실로 향하다가 또 다시 우뚝 발걸음이 멈춰진다. 늘 귀아프게 참새들마냥 재잘대던 소리건만 오늘은 웬지 그 소리마저 내 마음을 아프게 헤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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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책’없는 내 발길이 끝내 리지를 잃고 다시 몸을 돌렸다. 교실마다에서 들려오는 애들의 대화가 어쩜 하나같이 똑같은 혀꼬부랑(중국말)소리들이다. 나는 교실문을 열었다. 
   “老师好?”
    반갑다는 애들의 인사말이 되려 내 마음을 서글프게만 했다.
   “인사 다시 해봐. 우리말로!”
    한참 벙벙해있던 애들이 웬 일이냐는 듯 이리저리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그제야 내 말뜻을 알아차리고 심드렁한 표정으로 재차 인사를 올렸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그럼, 그래야지, 우리는 조선족이야!”
    언제부터였던지 딱히 알 수 없는 사이에 조선족학교의 애들이 주고받는 대화가 거의 중국어로 바뀌여버렸다. 민족 학교의 모습이 어수선해지고 있다는 불안감으로 마음이 산란해간다.

    일전에 형제학교 교원들과 이런 화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모두다 똑같은 안타까운 목소리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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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의민족의 유구한 력사와 그 전통을 이어가는 유서깊은 학교에서 소중한 우리 언어가 빛을 잃어가고 무기력해가는 듯한 느낌으로 가슴에 납덩이같은 무게를 느끼며 사무실에 들어오니 방학간 작문숙제책들이 두둑이 쌓여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일이 심혈하고 수개하고 평어를 달아가는데 불현듯 방학숙제를 내던 날 한 아이가 눈을 깜박이며 질문을 해오던 일이 새삼스레 떠오른다.
   “선생님 꼭 어머니를 써야 합니까?”
   “왜? 어머니 안 계셔요?”
   “아니, 저 어머니는 있습니다. 그런데 쓰기 싫습니다.”
   “싫어도 쓰세요!”
    어머니를 화제로 글을 쓰게 하려는 목적은 어머니란 애들에게 가장 익숙한 사람으로서 쉽게 다룰 수 있는 소재이기에 그러한 생활체험으로 사랑과 감정을 구애없이 표달할 수 있고 또 좋은 인성교육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내 예상과 빗나갔다.
   

   나에게도 엄마가 있다. 하지만 나는 엄마를 쓰고 싶지 않다. 작문선생님이 엄마가 있는 애들은 꼭 엄마라는 제목으로 써야 한다기에 나는 억지로 엄마라는 글을 쓴다.
    …내 엄마는 내가 아주 어릴 때 나와 동생을 버리고 갔다. 그래서 아빠가 나와 동생을 키웠다. 세상에서 제일 미운 사람이 엄마다. 엄마 얼굴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 부모들은 왜서 리혼을 할가? 리혼을 하면 엄마나 아빠중 한사람이 우리를 떠나야 하는데. 떠나간 엄마가 죽도록 밉다…”
   

    어떻게 수개하지? 어떻게 평어를 달아야 하나? 50을 넘은 이 나이에도 엄마라는 단어만 떠올려도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그리움에 젖어들군 하는 나다. 엄마라면 당연 이런 사랑과 감정이 앞서야 하지 않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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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사려구가 없는 천진하고 여린 마음들을 그대로 담은 글들에서 나는모 성애가 결핍하고 지어 모성애란 무엇인지도 모르고 자라는 애들이 모성애에 대한 리해가 부족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느꼈다.

    피를 나눈 모성애가 어쩌면 이정도로 묵어지고 식어갈가? 여린 마음에 영영 사라져버릴 것만 같은 모성애는 나로 하여금 아득히 높고 험난한 산봉우리를 톺는 듯 막연하게 안겨온다. 모순의 실머리를 어디로부터 찾아야 하지? 가령 찾았다면 어떻게 잇고 어떻게 다듬어가야 할가? 
    흘러보낸 담임교원의 삶에서 수없이 겪던 아픔들이 오늘은 또 다른 숲에서 발견되고 이어진다. 날로 옅어가는 겨례의 자취, 빛을 잃어가는 소중한 우리 언어 그리고 색바래져가는 모성애… 썰렁해지는 이 땅에서 민족의 아픔은 굴러가는 눈덩이마냥 나날이 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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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득 그 아픔들을 보듬고 치유할 수 있는 자락의 끝머리가 아직 내 손에 닿아있다는 생각이 번쩍 머리를 스친다. 잡아보자. 잡히는 만큼 그리고 당겨보자. 나한테 남아있는 힘과 금쪽같은 시간을 쪼개서라도…
종소리가 울렸다. 
    오랜만에 처음으로 새롭게 꾸려진 작문교실로 엄마찾는 새끼제비마냥 애들이 오구작작 모여든다. 나는 두둑이 쌓여있는 작문필기장을 정히 챙겨안고 교실로 향하였다. 여유롭던 내 발걸음이 다시 다그쳐진다. 자박자박 내 발걸음 소리를 직감하자 혀꼬부랑 대화들이 잠간새에 우리말로 바뀌여진다. 얄미운 애들의 소행에 절로 웃음이 나온다.

    수업이 끝나자 벅적이던 교실이 고즈넉해지고 석양빛이 창문으로 살며시 새여든다. 나는 창문을 활짝 열어제꼈다. 홀연 글짓기교실이 신기루가 되여 노을과 어우러져있는데 애들의 얼굴도 금새 노을빛에 함뿍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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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교사생애의 석양빛은 아이들의 얼굴에 비낀 밝은 웃음으로 더욱 황홀해갈 것이다. 나는 애들의 홍조마냥 빛뿌리는 그 석양빛을 즈려밟으며 새로운 인생길을 힘차게 내딛고 있다. 
    36년의 파란만장했던 내 교사의 삶에 동고동락의 지기로 함께 해온 아이들은 마치 리정표마냥 그리고 고목에 그어진 년륜처럼 나의 삶을 장식해주고 그들먹한 자부심을 부어주었다.

    아련히 젖어오는 추억의 정자에 앉아 슬프고 즐거웠던 그리고 행복했던 수많은 에피소드와 동반하며 나는 남은 여생을 또 다른 아픔으로 맞을 만단한 준비가 되여있다.

련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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