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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 [수기 52 ]내 '아픈 손가락'들이 남기고 간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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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영자| 작성일 :20-08-09 20:07| 조회 :42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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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 52 ]내 '아픈 손가락'들이 남기고 간 자리


편집/기자: [ 최화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0-06-18 10:09:27 ] 클릭: [ ]

 

 

  • 박미자

2020년 5월 4일 태암촌의 진달래는 유난히도 화사하게 봄볕을 만끽하고 있었다. 무덤무덤의 묘지를 지나 푸른 초원마냥 길게 뻗은 들판을 지나 흐드러지게 피여난 진달래는 파아란 하늘과 어우러져 연분홍빛 꽃바다를 뽐내고 있었다.

대자연의 정취에 도취된 나에게 자연은 장난과도 같이 싱그러움에 아픔을 선사했다.

“선생님, 소식 들으셨습니까? 욱이 하늘나라로 갔다고 합니다.”

느닷없이 걸려온 전화에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끝내... 끝내 갔구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하늘나라에선 더는 아픔이 없기를...”

“욱이가 못 다한 삶을 너희들이 더 잘 살아주기를...”

학급의 위챗그룹은 아픔으로 도배가 되였고 모멘트도 친구에 대한 그리움과 추모로 이어졌다. 20대의 문턱에 서서 애들은 3년을 함께 했던 친구를 잃는 생과 사의 리별을 경험하고 있었다. 5년이라는 시간, 병마의 시달림 속에서 아픔이 많았던 삶에 대한 회의와 함께...

아픈 손가락, 고중때 반주임이였던 나에게 욱이는 아픈 손가락 같은 존재였다.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교에 진학하여 꿈을 이루는가 싶더니 청춘의 랑만이 넘치는 대학교 교정에서 반년 만에 병으로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에 옮겨진 채, 일년의 투병생활 끝에 이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우리의 마음에 아픔 하나와 이름 하나를 남겨둔 채...

21세의 짧은 삶, 너무나 아픔이 많았던 애였다. 2015년, 그렇게 름름하고 후더분한 모습으로 그애는 나의 앞에 나타났었다. 약간은 한족말투가 섞인 조선말을 구사하는 한족애였는데 조선글을 배운다고 조선족 학교를 선택했단다. 우리 민족의 언어가 좋단다. 한가지 언어를 더 장악하여 사회에 진출하여 이중언어를 잘 활용하면서 살아보겠다는 야심찬 꿈을 가진 애였다.

하늘의 풍운조화는 예측하기 어렵다고 첫 신체검사에서 나타난 백혈병, 청천벽력이였다. 아직도 당황한 모습이 력력했던 교의가 전해온 확진이 필요하다는 진단과 순간의 전률이 생생하다. 온 집은 울음바다가 되였고 학급 친구들도 나도 학부모 주임도 서먹서먹함을 뒤로한채 무서움과 안타까움에 떨었다. 너무나 어린 나이라 차오르는 눈물이 가슴을 저리게 했다. 병원에 입원하여 골수를 뽑아 진단을 다시 받고 곧바로 항암치료에 들어갔다. 다행히 유전인소가 없기에 만성백혈병이라는 진단과 함께 한주일만 항암치료를 받고 항암약을 먹으면서 살아야 한다는 치료방안이 내려졌다. 감기에 걸리면 병이 급성으로 되여 생명을 위협할 수 있으니 감기를 조심하라는 말과 함께...

‘제발 졸업할 때까지만 살아다오!’

병상에 누워있는 16세의 소년,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생의 극한을 달리는 항암치료를 받는 애를 두고 드는 인간의 교활함과 요사함이란...교육생애, 학생을 잃기는 싫었던 나한테 드는 한심한 자사자리였다.

아픈 몸을 안고 그애는 3년의 고중생활을 시작했다. 한달에 한번씩 재검사를 받고 약량을 조절해나갔다. 어떤 날은 약량이 맞지 않아 온 몸에 부작용이 나타난다. 얼굴이 새까맣게 피부색이 죽어가고 힘들어 어쩔바를 모른다. 병원에 가서 다시 약량을 조절 받아야 한다. 몸에서도 약 냄새인지 이상한 냄새가 풍긴다. 그렇게 건강함이 넘쳐야 할 청춘의 몸은 발볌발볌 병마의 침식을 받아 야위여가고 있었고 생명은 갉아먹히우고 있었다.

그 애의 생애, 어린 나이에 안고 가야 했던 아픔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10대의 삶에 지워진 아픔, 태여난 지 얼마 안되는 한살에 첫 아픔을 겪었다. 부모의 리혼이였다. 정극을 향해 치닫는 부부의 싸움 끝에 엄마를 포기해야만 했다. 식당에서 허드레일을 하는 아빠와 할머니와의 생활, 엄마의 사랑을 만끽하면서 살아도 모자랄 판에 아린 리별과 함께 엄마라는 존재를 송두리채 뽑히우고 가난에, 배신에 선택당했다. 설상가상으로 고중 1학년 후학기, 또 하나의 생과 사의 리별, 할머니가 아픈 손자를 둔 채 저세상으로 갔다. 손주에 대한 아픈 사랑을 하셨던 가정의 주요 경제래원이였던 할머니의 부재로 순식간에 온 마음을 다하여 아프게 사랑해줄 수 있는 존재를 잃었고 병치료에 쓸 돈마저 겨우 마련할 정도였다. 그리고 마지막 일년, 감당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병원비에 눌리워 사회의 후원을 받아야만 했다. 사회 곳곳에서 내밀어준 따뜻한 손길 덕분에 마지막 일년, 겨우 스러져가는 생명은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투병생활의 아프고 짧은 일년의 삶을 선사받았다.

며칠씩 의식을 잃었다 찾았다를 반복하고 면역력이 바닥을 쳐서 평범한 병문안조차 애의 몸을 위협하는 상황이여서 자제를 당했다. 약간 정신이 돌아온 사이, 학급애들과 나의 방문에 생명의 끈질긴 힘을 다하여 애써 환한 웃음을 지으려 안깐힘을 쓰던 그 모습이, 어엿한 대학생이 되여 상과를 마치고 점심시간을 타서 찾아온 생생한 청춘들 속에서 아픈 웃음을 명랑하게 웃던 그 모습이 아직도 시리게 아프다.

어려움 속에서도 아픔 속에서도 애는 잘 견디면서 살아주었다. 수시로 터질 시한폭탄 같은 시한부 인생을 청춘의 정열로 잘 안고 나갔다. 학업에 대한 포기는 없었고 따뜻함에 대한 포기도 없었다. 동학을 도와주기를 즐기고 눈치기 운동에도 마스크를 꽁꽁 착용하고 나간다고 열성이다. 힘든 고3도 잘 견디여주었다. 병이 도질 때면 병원으로 집으로, 병세가 통제가 되였을 때에는 여전한 견강함과 씩씩함으로 꿈에 대한 도전과 삶에 대한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죽음이 다가오는 순간, 애는 무슨 생각을 했을가? 방관자들의 아쉬움과 안타까움, 언젠가는 잊혀져갈 순간의 아픔과 달리 한줌 삶에 대한 발악이나 했을가, 아니면 스러져가는 생명의 끈을 잡을 맥도 없이 서서히 서서히 사람냄새가 가득한 이 세상과 멀어져갔을가… 누군가를 열정적으로 사랑해보지도 못하고 누군가의 열정적인 사랑도 받아보지도 못한 채 21세의 삶은 그렇게 초연하게 꿈틀거리며 스러져갔다.

아픈 손가락, 십여년의 학급담임 생애 아픈 손가락 같은 학생들이 적지 않았다. 어릴 때 당한 사고로 다른 애들과는 다른 두 팔의 절반이 뭉텅 잘려나간 모습으로, 얼굴에 입으로부터 귀까지 커다란 상처자국을 지닌 채 옷소매를 팔락이며 나의 앞에 나타나 어찌할 바를 모르게 만들었던 련련이, 경제형편이 여의치 못하여 애를 키울 수 없다는 리유로 남의 집 문앞에 버려진 채 양부모 밑에서 커갔던, 낳은 정 키운 정을 알아가면서 살아갔던 향실이, 갓 태여난 자식을 두고 떠난 채 얼굴도 사진으로 익혀야 했던 엄마라는 그 얼굴, 가득 찬 분노로 친인절날 집에 돌아가서 엄마는 왜 나를 낳았는가 통곡을 했다는 엄마에 대한 아픔을 간직한 향옥이, 고중 1학년, 3학년 때 교통사고로 순식간에 너무나 사랑했던 엄마를, 아빠를 끔찍하게 잃어야만 했던 연연이와 영철이, 방황과 아픔을 억누르면서 살아가는 사이 간간히 억눌렀던 아픔을 오열로 터뜨리며 동학들의 가슴을 시리게 했다.

스러진 생명 속에서 21년의 삶은 무엇을 남기고 갔을가? 어느날 느닷없이 삶에 가해진 감당하기 힘든 무게-고통과 불행이라는 불청객을 어떻게 짊어지고 나아갔을가? 어린 나이에 겪는 아픔을 두고 10대의 끝자락에 선 청춘들을 대신하여 부모에게 책임이라는 것을 물을 수는 있을가?

이겨나가는 삶이였는지 살아지는 삶 속에 영위해나가는 삶이였는지 나는 잘 모른다. 어른이 되여버린 오늘, 우리는 쌓아지는 년륜 속에서 고통과 아픔을 이겨나가는 법을 터득해 나아가고 있다. 평범한 삶 속에서도 삶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추구와 모색을 거듭하고 있다.

날씨가 아무리 화창해도 언제나 하늘에는 구름을 찾아낼 수 있다고 한다. 아픔 앞에서 10대의 청춘들이 감당하기엔 너무나 버거웠던 삶의 무게들, 평범한 삶 속에서 애들은 평범하지 않은 일상을 헤쳐나갔다. 불행에 대처하는 법도 모른 채, 아픔을 이겨나가는 해탈의 법도 모른 채, 닥쳐진 삶에서 허둥허둥 걸어나갔던 것 같다. 청춘들이기에 가능했던, 아픔 속에서도 웃을 수 있는 천진함과 패기 속에서 정해지지 않은 꿈을 향한 동경을 지니고 힘차게 울다가 웃으면서 걸어나갔던 것 같다. 아픔이 할퀴고 간 자리를 메워가면서… 그리고 언젠가는 더 단단해진 날개로 억센 날개짓을 할 수 있는 그날을 기다리면서…

아픈 자식의 자리에 부모의 책임은 어느 만큼이여야만 할가? 그 책임을 도덕적인 자대로만은 재일 수 없다. 내 삶에 찾아온 자식에 대한 사랑은 아무런 리유도 없는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책임이고 의무이며 헌신이고 인간의 본능이여야만 한다. 그늘이 필요한 삶의 자리에 부모라는 이름으로 된 그늘이 절절하다.

“이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다니!”

누군가 힘들 땐 가서 해가 지는 멋진 풍경을 보라고 했다. 죽을 만큼 힘든 삶의 구석에도 아름다움을 만발하는 생의 순간은 찾아온다. 생명이 스러지지 않는 한은…

나의 아픈 손가락들이 남기고 간 삶의 자리, 아픔만은 아니였다!

[작자는 연길시제2중학교 교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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