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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시고기같은 우리네 오라버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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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채선애| 작성일 :12-03-19 11:13| 조회 :16,45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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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속요중에 첫손에 꼽히는것은 《사모곡(思母曲)》인데 현대조선어로 옮기면 대충 다음과 같다.


호미도 날이기는 하지만
낫같이 들리는 없어라
아버님도 어버이기는 하지만
위 둥더둥셩
어머님 같이 사랑할수는 없어라
아소 님아 어머님 같이 사랑할수 없어라


녀성인 서정적주인공의 입을 빌어 사랑하는 랑군님의 사랑은 더 말할것도 없고 아버님의 사랑마저도 어머니의 사랑에 견줄수는 없다고 모성애를 기린 내용이였다.


모성애에 대한 례찬은 서양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독일의 철학자 에히리 프롬은 《사랑의 예술》이란 유명한 책에서 모성애는 무조건적이고 헌신적인 사랑이라면서 부성애는 조건있는 아주 제한적인 사랑이라고 갈파해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동물세계에는 부성애가 오히려 모성애보다 처절한 사례들이 적지 않게 눈에 뜨인다. 그중에서도 제일 눈물겹도록 처절한것은 아빠가시고기의 부성애라고 한다.


산란기가 되면 아빠가시고기는 우선 주둥이로 물밑의 모래를 파서 뱉어내기를 수백, 수천번을 하면서 기초공사를 한후 주변의 수초로 둥지를 결어놓고 몸에서 점액질을 분비해 둥지주변을 튼실하게 점착시켜놓는다. 뒤이어 배가 불룩한 암컷이 다 만들어진 둥지로 들어가면 아빠가시고기는 마누라의 등을 자극해서 산란을 돕고 또 산란에 모든 힘을 다 써버린 암컷이 기진해서 물우에 떠있다가 생을 마감하면 새끼양육의 무거운 짐을 혼자서 짊어진다고 한다. 열흘이 넘도록 밤에도 쉬지 않고 지느러미를 흔들며 부채질을 해서 마누라가 낳은 알들에 산소를 공급해주는건 물론이고 냄새를 맡고 알을 훔쳐먹으러 오는 다른 물고기들과 필사적으로 싸우기도 하면서 보호를 한다고 한다.


아빠가시고기는 그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통에 기력이 쇠진하여 점차 거무스럼한 색갈로 변해간다. 알에서 부화된 새끼가시고기들이 물속에서 자유로이 헤염치게 될 때 생을 마감하게 된 아빠가시고기는 사력(死力)을 다해 둥지밑으로 다가가서 새끼들의 먹이가 되여준다고 한다. 이렇게 새끼가시고기들은 아빠가시고기의 살점을 뜯어먹고 자력으로 살아갈수 있도록 자란다는것이다.


동물로서는 어류(鱼类)보다는 몇단계 고급적 동물, 만물의 령장이라는 인간의 아빠들에게는 아빠가시고기같은 거룩하다 못해 처절하기까지 한 그런 부성애가 있을가?


며칠전에 사업파트너라고 하거나 친구의 오빠라고 하기보다는 옆집 오빠라고 더 많이 부르며 허물없이 지내던 선배님이 황천길을 떠나갔다. 곁에 아무도 없이 혼자서 텔레비죤을 시청하다 쏘파에 앉은채로 한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할 황천길을 훌쩍 떠나갔던것이다. 이 세상에 골회 한줌 남기지 못하고 한가닥 연기로 사라져버리는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내 머리에 아빠가시고기의 이야기가 세삼스레 떠오르는건 웬 영문일가?


옆집 오빠와 나의 인연은 1961년부터 맺어졌다. 당시 지금의 룡정시 미식거리에서 나무울바자 하나를 사이두고 5년간 이웃으로 살면서 8년이나 년상인 오빠를 본 기억은 거의 없고 누이동생인 영금이와만 친해게 지낸 나는 1993년말 연변라지오텔레비죤신문사에 전근되여와서야 오빠와 가까이 지내게 되었다. 안해가 한국으로 돈벌러 나가서 오빠가 아빠, 엄마를 겸해서 두 딸애의 뒤바라지를 하면서 홀아비살림을 하고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세상이 돌아가는걸 보니 적잖은 가정들에서 한국바람으로 녀자가 바깥으로 몇년씩 나돌고 남자가 집에 남아 살림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주부(主妇)대신으로 주부(主夫) 노릇을 하면서 오빠처럼 살아가니 나도 별로 개의치는 않았다.


당시 오빠네 큰딸 문휘는 소학생, 작은 딸 문화는 겨우 유치원생이였는데 서른고개를 넘긴후 늦장가를 간데다가 첫 아이를 로내출혈로 잃고 엄청 늦게야 딸 둘을 본 오빠에게 있어서 만득녀(晚得女)인 그애들은 그야말로 장중보옥(掌中宝玉)이였다. 그래서 오빠는 처형벌되는 아줌마 한분이 보모로 있으면서 살림을 맡아주는 몇년동안에도 애들만은 될수 있는 한 제손으로 챙겨주느라 최선을 다했다.


집에서는 애들이 좋아하는 반찬감을 사들이느라고 하루에도 두세번씩 시장에 드나들었고 학교나 유치원에 가서는 《할아버지》대접을 받으면서도 학부모위원회 주임직을 맡고 열성껏 뛰여다녔다.


낮이면 직장에 나와 자기 앞에 차례진 사업임무를 원만히 수행하느라 눈코뜰새 없고 밤이면 철부지 딸애들의 엄마까지 되여주느라 편할 사이가 없는 오빠에게 있어서 유일한 기쁨은 소선대 대대장으로 활약하는 큰딸의 씩씩한 모습과 연길시소년궁전에서 성악을 배워 이따금 중창 혹은 방창대원으로 텔레비죤화면에 오르는 작은 딸의 귀여운 얼굴을 보는것이였다.


그 애들이 학교나 유치원에서 표창을 받고 성과를 따낼 때면 그 매력적인 실눈이 한일자가 되도록 온 얼굴에 함박웃음을 담으며 보듬어주고 아플 때면 병원에 데리고간다, 약을 사온다 하면서 살뜰히 보살펴주고 지어 달거리시중까지도 서슴지 않은 오빠는 진정 자애로운 아빠이자 따뜻한 엄마였다.


이렇게 키운 큰딸이 남경의 모 대학에 붙고 작은 딸이 초중에 올라가자 오빠는 아침에 나가 밤중에야 들어오는 두식구 살림에 안해가 한국에서 힘들게 번 돈을 보모비로 랑비할 필요가 있느냐며 살림을 자기가 맡았다.


이때로부터 오빠는 밥짓는것은 물론이고 빨래까지 하느라 더구나 분주히 보내게 되었다. 유일한 녀동생인 영금이가 자주 드나들었지만 소아마비후유증으로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그애가 힘들세라 웬간한 일은 절로 하기에 신경을 도사렸다.


을형간염에 혈압까지 높아서 다른 사람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처지에 살림을 떠메고 애들 시중까지 하느라 오죽 힘들었으련만 한해에 한번꼴로 병원에 입원하면서도 반날씩은 출근하고있는 오빠가 그렇게 빠른 속도로 망가져가고있는것을 나는 미처 몰랐다.


점심에 약주 한잔 드시고 들어와서 걸상에 앉기 바쁘게 마주앉은 나한테 《경례》를 하며 잠에 곯아떨어지면 오늘은 경례 몇번 받았다고 놀려주고 침대에 누운지 1분이 되기전부터 요란하게 코를 골다 근 20초씩 숨소리마저 간간해질 때도 있었지만 원래 잠습관이 그런줄로 알고 시끄럽다며 두덜대기만 했다. 그리고 몇달전 작은 딸의 대학지원서를 쓰다가 새벽 네시경에 두번씩이나 전화를 걸어왔을 때에는 중병에 계시는 아버지때문에 신경이 팽팽해있던차라 너무도 놀라 화부터 냈었다.


오빠가 친녀동생 못지 않게 사랑하고 믿어주면서 기쁜 일이나 속탄 일이나 털어놓군 했지만 도움을 별로 주지 못했으며 내부퇴직을 하고 출근하지 않는 몇년동안에는 생일날을 뻔히 알면서도 련락이 오지 않으면 문안전화 한통 해드리지 않았다.


2년전의 일이라 기억된다. 그때 병원에 입원한 오빠는 나한테 전화를 걸어와 병실까지 알려주면서 문안을 와달라고 암시를 했다. 그 이튿날 일이 많아 몸을 빼지 못하고있는데 또 전화가 걸려왔다. 병실을 옮겼다고 말하고나서 링겔주사만 맞고 집으로 돌아가니 헛탕을 치지 말라고 귀띔하는것이였다. 연길시에 친척 몇집 없는 오빠가 사람이 얼마나 그리웠으면 문병을 해달라고 요청까지 했으랴? 하지만 그 심정을 헤아리지 못한 나는 마지못해 몇몇 동료들을 조직해서 문안을 갔다왔고 줄곧 부조를 받자고 그러는걸로 오해해왔다.
쓰러지기 며칠전의 월요일, 오빠가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은 나는 이전처럼 링겔주사를 며칠 맞는줄로 알고 로임이나 탄후 보자며 문병계획을 차일피일 미루었다. 그런데 오빠가 그날을 기다리지 못하고 총망히 떠나갈줄이야!?


부고를 받고 집에 달려가서야 친구 영금이한테서 작은 딸을 북경의 대학교에 보낸후 줄곧 건강상태가 좋지 않았는데 지난번에는 심장확장때문에 입원해서 구급치료를 받았고 콩팥에도 결석이 생겼으며 혈압은 수은주가 모자라 정확한 수치를 재이지 못할 정도였다는 말을 듣고 나는 너무도 억이 막혀 눈물을 쏟았다.


난생처음 친혈육이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화장터행차를 두번씩이나 하면서 속죄하는 마음으로 친구 영금이를 도와 후사처리에 한몫하면서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오빠한테서 안해가 없이 독수공방으로 지낸 기나긴 10년 세월, 두딸을 애면글면 키우고 지키면서 지낸 40대후반과 50대 전반은 많은 어려움과 위험을 감내하면서 혼자 알을 지킨다는 아빠가시고기보다 훨씬 더 괴롭고 외로운 나날이였을것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어찌 피와 살로 만들어진 사람이 성할수 있기를 바라랴?


옛말에 고생끝에 락이 온다고 했지만 오빠는 그 락을 기다려내지 못하셨다. 새끼들에게 살점까지 다 바치는 아빠가시고기처럼 궁핍과 외로움, 병마속에서 비틀대면서도 필사적으로 새끼들의 뒤바라지를 하다가 쉰아홉고개를 넘기지 못하고 끝내는 쓰러져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요즘 우리 민족사회의 현실은 아빠가시고기같은 남자분들에게 있어서 너무나 춥고 아프고 외롭다. 불쌍한 아이들도 구해야 하지만 역시 불쌍하기는 마찬가지인 아빠가시고기같은 수많은 오라버니들을 구해야만 할것이다.

                             《연벼문학》 2006년 3호에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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