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받는 녀자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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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영애| 작성일 :12-03-23 08:46| 조회 :18,692| 댓글 :0본문
3년 전, 어느날 밤에 있었던 일입니다.
나와 소파에 나란히 앉아 한국 텔레비죤 드라마 《태조왕건》을 보고있던 남편이 자그만치 20여명의 왕후와 비빈들을 거느리고 사는 왕건을 보고는 불쑥 이런 말을 던진적 있었습니다.
《허허 녀자 스물은 몰라도 셋만 데리고 살았으면!》
이는 남편이 부지불식간에 던진 말이 분명했습니다. 그러나 흔히 무의식간에 던지는 말이 그 사람의 본심을 더 솔직하게 드러내는 법이지요.
그날 남편은 분명 한 녀자에게만 만족해서 살고있는게 아님을 스스로 드러낸것이지요. 나의 남편도 분명 남자이니깐요. 현실의 여건이 여의치 않아 그렇지 만약 여건이 닿는다면 진시황(秦始皇)처럼 삼천궁녀(三千宮女)는 몰라도, 태조 왕건처럼 20명은 몰라도, 자기 말대로 녀자 셋은 거느리고 살려고 할게 분명했습니다.
남자들의 욕심은 정말 끝이 없구나! 마누라 하나가 부족해서 셋이란 말인가? 속으로는 앵돌아졌지만 나는 짐짓 태연하게 웃으면서 물었습니다.
《왜서 3천도 아니고 3백도 아니고 하필이면 셋이예요?》
《많을수록 좋기야하겠지만, 개괄적으로 말해서 우리 남자들에게는 세 녀자가 필요하지. 정숙한 녀자, 현명한 녀자, 요부같은 녀자, 이렇게 셋이 필요한거야. 우선 살림을 잘하고 자식 잘 챙기는 정숙한 녀자, 말하자면 현처량모(賢妻良母)가 필요하겠지. 그리고 서로 공동한 언어도 있고 똑똑하고 일정한 지식과 재간도 있는 현명한 녀자, 말하자면 지적인 녀자도 필요한거야. 하지만 이 두 녀자만 가지고는 안돼. 동지섵달 긴긴 밤 한 허리를 베여 내여 춘풍 이불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님 오시는 밤이면 길이길이 풀어내는, 황진이 같이 섹시하고 예쁜 녀자, 요부같은 녀자도 필요한거야. 그래서 여우같은 녀자와는 살아도 곰 같은 녀자와는 못산다는 말이 있잖아, 호박같은 녀자와는 더욱 못살지, 허허허!!》
나는 남편의 이 말에 이렇게 은근히 비꼬았습니다.
《그럼 당신앞에 있는 이 녀자는 세 녀자 중에 어떤 부류에 속하는지 좀 알아봅시다. 그래야 모자라는 두 녀자를 구색을 맞춰 물색할거 아니예요. 내가 무슨 수를 대서라도 마련해 드리오리다. 내가 달갑게 중매군이 되오리다.》
내 말에 은근히 가시가 돋쳐 있음을 알아챈 남편은 사공이 배머리 돌리듯 인차 말머리를 돌려댔습니다.
《당신은 일당백(一當百)은 못돼도 일당삼(一當三)은 돼요. 내 눈에 당신은 한 몸에 정숙한 녀자, 현명한 녀자, 요부 같은 녀자, 이 셋을 골고루 겸한 완미한 녀자란 말이요. 당신 하나 데리고 사는 게 녀자 셋을 데리고 사는 거나 마찬가지라니까. 그래서 내가 당신 한 녀자로 이날 이때까지 아무 군소리 없이 만족하면서 사는게 아니겠소. 허허허!》
그날 남편은 이렇게 엉너리를 치면서 뒤 수습을 했어요 .
바로 그 때부터 부지중 오기가 생긴것 같습니다.혹은 남편의 격장법(激將法)에 내가 놀아나는지도 모릅니다. 남편이 말한 세가지 류형 녀자의 본질과 특성을 다는 갖추지는 못하더라도 어지간히 겸비한 녀자로 될수는 없을까? 나는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된겁니다.
녀자 나이 쉰이면 옛날같으면 할망구라 하지요. 그런데 오십고개에 당금 오르게 될 내가 이런 허망한 생각을 하게 되였지요. 그래서 일신삼역(一身三役)으로 스스로 고생을 사서 하면서 매일 매일을 분주하게 보내지 않을수 없게 되였답니다.
나의 하루일과는 남편의 녀자분류에 따르면 정숙한 녀자, 현처량모의 배역을 맡아 연기를 하는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아침에 잠자리에서 금방 일어나 부수수한 얼굴에 긴 삼검불같은 머리를 대충 삔으로 얹고서 쌀을 씻어 전기밥솥에 앉여 놓는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밥이 되는 사이 남편의 벗어놓은 옷견지와 양말 그리고 어지러운 옷견지들을 세탁기에 넣고 빙빙 돌리는 한편 반찬을 만드느라고 볶고 지지고 한바탕 분주하게 돌아쳐요.
식사가 끝나서 남편은 식탁에서 물러나 한가하게 커피를 마시면서 쏘파에 앉아있으면 나는 싱크대에 마주서서 부랴부랴 설거지를 하지요. 설거지가 끝나면 남편이 입고 갈 양복을 다리고 넥타이를 준비해 놓고 모든 갖고 갈 물건들을 챙겨놓느라고 다람쥐 채바퀴 돌리듯 부산을 피워요.
남편이 집을 나서면 장판을 쓸고 닦고, 오금에 비파 소리 나게 장을 봐와서는 고추를 말린다, 김치 담근다, 밑반찬 만든다하며 정신없이 돌아칩니다. 이럴 때면 가끔 남자로 태여 나지 못한 게 한스러울 때도 있으나, 이렇게 순서대로 날마다 반복되는 일상이 24년 세월속에서 익숙해져 운명적으로 받아들여요. 녀자들이란 도대체 왜 이렇게 해야 할 일은 끝이 없고 다사다망한지… 농부일생이 무한(無閑)이라지만 녀자의 일생이야말로 무한(無閑)인것 같습니다.
남편이 출근한 뒤에는 남편의 녀자 분류에 따른 요부(妖婦)의 배역이 시작됩니다. 밤에 요부가 되라고 했지만 나는 낮에, 그것도 흔히는 아침나절에 요부가 됩니다.
말끔하게 세수를 하고나서 거울 앞에 마주앉아 무정(無情)세월이 흘러간 흔적인 눈가며 이마에 생기기 시작한 잔주름을 들여다 볼 때면 서글픈 생각이 켜켜이 가슴 한구석에 내려 쌓입니다. 그럴 때마다 나한데도 20대 꽃나이 청춘시절이 있었는데… 참! 내가 언제부터 요 모양, 요 꼴이 됐지?》하고 혼자 말로 중얼거리면서 슬럼프에 빠져 한참이나 멍하니 앉아 있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마음은 아직도 2, 30대 새댁시절이라 얼굴을 예쁘장하게 가꿔보려고 무진장 애를 씁니다. 스킨으로부터 시작하여 영양크림, 에센스, 자외선차단크림, 메이크업베이스, 파운데이션 등으로 얼굴에 난 작은 반점까지 가리기 위해 열심히 쥐여 바르면서 닥달질을 합니다.
거기에다 눈두덩이에는 연한 커피색 새도우까지 살짝 칠하고 입술에는 빨간 립스틱까지 살짝 바르고 나면 어느새 아침에 금방 잠자리에서 일어나 부수수하던 그 모습이 깜쪽 같이 사라지고 예쁘장한 모습으로 변신한답니다. 물론 그것은 나의 자아감각일 따름이지요.
그리고 또 20대 처녀들처럼 손톱에 연분홍색 빛갈의 매뉴큐어도 바르고 거울에 비친 얼굴을 자기절로 감상하노라면 때로는 구름을 타고 붕 뜨는 기분이 됩니다. 호수의 수면에 비춰진 자기의 멋진 얼굴에 넋을 잃은 나르시스가 아마도 이런 기분이였겠지요. 저는 이렇게 누구도 없는 호젓한 집안에서 마치도 화려한 파티에 참석할 준비라도 하듯이 항상 아름답게 성장(盛粧)을 하고는 나르시스처럼 자아도취에 빠지군 합니다.
그러다가도 내 마음은 다시 이름할수 없는 비관에 빠지기도 합니다. 아무리 찍어 바르고 화장한들 별 볼 일 없는 50대 녀자를 어느 젊고 근사한 남성이 쳐다보기나 할까? 녀자는 문턱을 넘으면서도 열 두가지 생각을 한다는 말은 참으로 맞는 말 같습니다. 이처럼 부정과 긍정, 긍정과 부정 그리고 락관과 비관, 비관과 락관을 거듭하는 내 마음은 마치도 흐렸다 개고 개였다가 흐려지면서 변덕을 부리는 음산한 날씨같습니다.
날씬한 몸매를 가꾸려고 날마다 헬스클럽에 다닌지도 벌써 일년 가까워 옵니다. 오후나 저녁에 약 한 시간 좌우씩 리용해 10, 20대 젊은이들과 함께 열심히 뛰고 아령체조도 하고 에어로빅댄스도 한바탕 추고 나면 땀벌창이 되여 온몸이 날듯이 거뿐하고 사지의 근육은 물론이고 앞가슴마저 처녀들처럼 탱탱해지는것 같아 여간만 기분이 들뜨는게 아닙니다. 다만 호마(胡馬) 궁둥이 같은 내 히프는 아무리 에어로빅댄스를 추고 다이어트를 해도 그 식이 장식으로 좀처럼 작아질 줄 모릅니다. 다행히 아직은 똥배가 나오지 않았고 허리는 개미처럼 짤룩해서 나를 너무 실망시키지는 않고 어느 정도 위안을 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옷장에 있는 시체에 따르는 옷들을 하나씩 입어보고는 패션쇼에 등장하는 모델처럼 거울 앞에서 자기 옷맵시를 이리 비추고 저리 비추면서 포즈를 취해 보기도 하고, 오늘의 외출복은 어느 옷을 입으면 좋을가? 우아하고 점잖게 양복으로할까 야하고 섹시하게 청바지로 할가? 연분홍색상으로 할까 연두색으로 할까 이 궁리 저 궁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별로 나들이 갈데도 없는데 말입니다. 과일이 아니면서도 과일인체하는 토마토 같은 50대 녀자를, 쉬쉬한 냄새가 나는 쉰 고개에 오른 녀자를 누가 만나자는 사람도 별로 없고 누가 초청하는데도 별로 없으니까요.
그래서 나는 우리에 갇힌 짐승처럼 집안에서 서성거리다가는 성장을 한 채로 피아노 앞에 마주 앉을수밖에 없습니다. 첫번째 연주곡 《어머님 생각》으로부터 나의 피아노연주곡의 레퍼토리는 무궁무진합니다. 한 시간 정도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다 보면 금세 가슴이 후련해지고 머리가 맑아지고 우울했던 기분도 뜬 구름이 바람에 밀려가듯 말끔히 사라져 버립니다. 그래서 또 정신승리법(精神勝利法)으로 울적함을 전승하고 다시 즐거움과 행복감을 되찾곤 합니다. 정작 쉰 고개에 오르고 보니 마음은 2, 30대의 새파란 젊은 시절과 하나도 다름이 없습니다. 나이 륙십이라도 애들 마음이라고 한 옛날 로인들의 말속에 담겨있는 의미를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밤이 되면 나는 남편의 녀자 분류에 따른 현숙한 여자, 지적인 녀자의 배역에로 들어갑니다.
나는 매일 밤마다 두 시간이상씩 컴퓨터에 마주앉아 인터넷에 오릅니다. 뉴스도 보고 각종 문학사이트를 전전하면서 다양한 장르의 글도 읽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게 싫증이 나면 가끔씩 키보드를 두드리면서 글도 써 봅니다. 글줄이 꽉 막혀 눈앞이 캄캄해 나면 다시 책을 집어 듭니다. 그러다가 령감이 갑자기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면 그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다시 컴퓨터에 마주 앉아 부지런히 키보드를 두드리기도 합니다.
현숙한 녀자, 지적인 녀자로 되자면 밤 시간 가지고는 모자람을 느낍니다.
그래서 번마다 놓치지 않고 문학강습반에 다니고, 대학교의 교실에 렴치 불구하고 끼여들어 아들딸 같은 애숭이들과 함께 교수님들의 문학강의에 열심히 귀를 기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몸도 단련할 겸 훌륭한 문학스승들이 많은 등산팀에도 합류하여 열심히 어깨너머로, 귀동냥으로 그분들의 고담준론을 귀담아 듣군 합니다. 그래서 사십에 첫 보선이라지만 나는 오십에 첫 보선이라고 지난해에는 윤동주문학상 수필부분의 신인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오십에 신인상을 받았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노벨문학상보다 더 귀중합니다.
깊은 밤이면 나는 다시 현처량모의 배역으로 되돌아갑니다. 한국에 가 있는 아들녀석과 메신저로 대화를 합니다. 밥이나 제때에 챙겨먹는지, 공부는 열심히 하고 있는지, 어디 아픈 데는 없는지, 녀자친구와의 련애는 진전이 어느정도 되였는지, 이젠 다 큰 사내가 되였는데도 마치도 강가에 내놓은 철부지처럼 언제나 시름을 놓지 못합니다. 《별 근심을 다 한다, 그런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말아요!》하고 아들녀석한테 퉁명스러운 소리를 들으면서도 그날그날 아들녀석을 체크하지 않고는 시름이 놓이지 않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녀석을 남보다 더 훌륭하게 키우려는 나의 욕심은 그 어느 엄마보다 못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다사다망하게 돌다보면 흔히 자정이 지나고, 그러면 나의 하루 일과도 끝나서 그제야 꿈나라로 들어갑니다.
매일 밤마다 나는 이런 하루하루가 모이고 모여서 내가 정말로 남편의 말대로 정숙한 녀자, 현명한 녀자, 요부 같은 녀자, 이렇게 세 녀자가 합쳐서 완미한 녀자로 변신하는 꿈을 꿉니다.
물론 나의 이런 꿈은 몇 광년(光年)이나 떨어져 있는 별이라도 잡을수 있다고 생각하는 어린 나방의 어리석은 생각과 오십보백보라는 생각합니다.
그래도 나는 죽을 때까지 이 꿈을 버리지는 않을것입니다.
남편으로부터 사랑받는 여자이고 싶어서 그러는지, 아니면 나 자신으로부터 사랑받고 싶은 자기애 때문에 이러는지 나 자신도 갈피를 잡을수 없습니다만 이렇게 스스로를 혹사시키면서 살아가고있습니다. 호호호.
《연변문학》 2007년 제3기에 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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