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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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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리영애| 작성일 :17-01-18 11:05| 조회 :4,12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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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가 시집을 간단다. 나에게는 조카가 여럿이 있는데 형님의 자녀로는 둘이 있다. 형님의 큰딸은 이미 시집을 가서 아이까지 낳고 한국에서 살고있으며 막내딸이 이제 30살을 훌쩍 넘기고 시집을 간단다. 그것도 머나먼 연해도시에서 결혼식을 올린다고 한다. 형님은 생전에 막내딸을 특별히 이뻐했다. 그런데 아버지 없이 결혼하니 벌써 조카가 안스러워진다. 순간 겨우 반세기밖에 살지 못한 형님의 모습이 그림처럼 떠오른다.

형님이 이 세상을 떠난지도 어느덧 십년째다. 형님은 정확히 49세에 돌아갔다. 흔히 민간에서 말하는것처럼 아홉고개를 넘기지 못했다. 지금도 형님이 운명하던 그날이 눈에 선하다.

그날 오전, 형님이 위중하다는 형수님의 전화를 받고 택시를 불러타고 형님네 집으로 갔을 때는 형님은 이미 인사불성이 되였다. 침대우와 형님의 앞섶에는 각혈로 피범벅이 되여 온 방안에 비린내가 확 풍겼다. 십여년을 간경화로 몇번이나 병원에 입원했지만 워낙 병이 너무 깊은 탓으로 병원에서도 어쩔수 없다는것이였다. 나는 다짜고짜 형님을 둘쳐업고 택시를 불러 연변병원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 형님은 택시에서 또 한번 각혈하여 나의 옷섶과 택시의자를 흠뻑 적셨다. 병원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형님은 끝내 그날 점심무렵 숨을 거두었다.

나는 후사처리를 다해놓고 조금 숨을 돌릴 때에야 형님의 마지막 운명의 그 자리에 웬 이상한 녀자가 있는것을 발견했다. 녀자는 보통키에 서른이 금방 넘어보였는데 얼굴이 예뻤다. 눈물을 많이 흘려서인지 흰 얼굴이 더 창백해보였다. 그날 녀자는 말 한마디 없이 사라졌다. 그 녀자가 돌아간후 형수님의 얼굴이 푸르뎅뎅해졌다. 형수님은 그 녀자가 형님과 보통사이가 아니라는것이다. 그렇잖으면 왜 저렇게 슬프게 울수 있는가며 십중팔구는 형님의 다른 녀자라고 단정했다. 일이 이처럼 불거지니 난처한건 나였다. 나와 우리측 친척들은 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이미 사망된 형님에게 옴니암니 따질수 없으니 삼일장이나 잘 치르자고 형수님을 달랬다. 하지만 형수님은 사망된 사람은 불쌍하지만 여직껏 자신이 속은것을 생각하면 분통이 터진다며 펄펄 뛰였다.

형님은 일찍 농촌학교에서 추천을 받아 연길 어느 한 공장으로 올라왔다. 70년대초에 그런 정책이 있어서 일개 무식한 농촌집 맏이인 형님에게 행운이 차례진셈이였다. 형님은 보통키에 날씬하고 부리부리한 눈에 코가 우뚝하여 우리 형제들중에서 제일 잘 생긴 미남이였다. 마을에서는 형님을 아버지가 다른 자식이라는 풍문까지 돌았다. 내가 한번은 엄마에게 그 소문이 진짜인가고 물었더니 어느 놈이 그따위 개소리를 치느냐며 절대 아니라고 쐐기를 박았다. 공장에 배치받은 형님은 마음이 곱고 정이 많아 친구가 많았고 해마다 선진생산자로 당선되여 그 상장이 우리 낡은 초가집 안벽에 다닥다닥 붙어있다.

한번은 형님이 국경절휴가로 집에 와서 옥수수가을을 도와주는데 마을 청년 둘이 싸움을 벌였다. 그중 한명은 나와 구촌조카벌 되는 청년이고 다른 한명은 마을에서 이름난 싸움군이였다. 싸움은 다른 곳에서 붙었는데 구촌조카가 더 날파람이 있었던지 싸움군 청년이 맞았다. 그러자 싸움군 청년은 다짜고짜로 칼을 들고 찾아와 다시 구촌조카와 맞붙었다. 둘은 옥수수밭에서 칼과 낫을 들고 서로 치고 박으며 정신없이 날뛰였다. 바로 그때 형님이 싸움군 청년한테 와락 달려들어 팔을 비틀어 간신히 칼을 빼앗았다. 싸움은 드디여 끝났다. 나는 형님의 용기와 인정에 탄복하지 않을수 없었다. 흉기를 든 싸움군에게 달려든다는것은 웬간한 용기가 없으면 안되는 일이다. 그때 나는 그러다 칼에 찍히면 어쩌냐고 하니 형님은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랬다고 만약 인명사고라도 나면 큰일이니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그날 저녁, 싸움군 청년의 엄마가 일부러 우리 집에 찾아와서 형님의 손을 꼭 잡고 하마트면 큰일이 터질번한 싸움을 말려줘서 정말 고맙다고 했다. 그도 그럴것이 부모들은 큰 사고를 치지 않은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기기때문이다. 그러면서 형님은 어디에 상한데가 없는가고 물었다. 형님은 아무 일도 없다면서 히죽이 웃었다. 실은 형님도 그 애와 함께 넘어지면서 옥수수그루에 팔굽을 다쳐 피를 많이 흘렸다.

그런데 얼마후 형님은 갑자기 다리를 잘 쓰지 못하더니 대퇴골괴사라는 재수 없는 병에 걸려 완전히 불구자가 되였다. 설상가상으로 또 공장이 파산되면서 형님은 최하층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형님네는 연길 동쪽 변두리에서 세집을 몇번씩 옮기면서 얼마 안되는 월급에 형수님이 장사하는 수입으로 아이들을 공부시키고 겨우 목구멍을 말리는 형편이였다. 락심한 형님은 맨 술만 마시더니 몸이 너무 허약해져 마른 장작을 방불케 했다.

나는 형님의 모습이 너무 안스러워 몇번이고 담배와 술을 끊으라고 했지만 그때마다 형님은 《하루종일 집안이 아니면 마당밖에 못 나가는 신세에 담배와 〈똥빼주〉도 마시지 않으면 어떻게 살란 말이야?》라고 넉두리하기에 더이상 말릴 재간이 없었다… 그런 형님에게 다른 녀자라니? 이건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다. 그럼 그 미스터리 녀자는 대체 누구인가?

일은 바로 사흘만에 또 터지고말았다. 아침 일찍부터 우리는 화장터에 가서 형님의 장례를 서두르고있는데 그 녀자가 또 와있었다. 검은 례복을 입고 마치 상주마냥 친척들의 줄에 서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형수님의 안색은 또 흐려졌다. 문상을 온 여러 사람들의 앞이라 이를 악물고 참고있는것이 나의 눈에도 확연히 드러났다. 나는 또 선 떡을 먹은 사람처럼 불안했지만 아무런 내색을 않고 고별청에서 나와 안신제를 지내려고 제단으로 올라갔다. 그 미스터리 녀자가 간줄 알았는데 웬걸 제단까지 따라올라왔다. 진행자가 빠진 사람이 있으면 나오라고 하니 그 녀자는 제일 마지막 사람으로 술을 붓고 절까지 세번 했다. 순간 형수님의 얼굴에서 검은빛이 파도쳤다. 나는 이제 장례식도 막바지라 형수님이 그 녀자의 머리끄뎅이라도 잡아 내칠가봐 안절부절 못했다. 하지만 형수님이 용케 참아주었기에 저으기 안도의 숨을 내쉴수 있었다. 사돈측 친척들의 눈길이 곱지 않은것은 더 말할나위 없었다.

나는 그 녀자에게 고인하고 어떤 관계인가 묻고싶었지만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다 괜히 형님하고 그렇구 그런 관계라고 하면 내 립장이 더 난처해질것 같아서였다. 형님의 장례식은 그런대로 원만히 끝났다. 손님들은 먼저 내려가고 우리가 뒤처리하면서 보니 그 녀자는 이미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나는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다시는 그 녀자를 볼일이 없겠지 하면서 나는 한시름을 놓았다.

하지만 오산이였다. 우리가 식당에 왔을 때 그 녀자도 이미 와있었다. 더구나 억이 막힌건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였다. 아이까지 하나 달고있었다. 아이는 네살가량 되는 남자아이였다. 그 아이를 보는 순간 나는 심장이 쿵― 하고 멈추는것만 같았다. 나뿐만아니라 친척들 모두가 놀라운 기색이였다. 나는 그 와중에도 아이를 찬찬히 뜯어보았다. 아이는 얼굴이 희였으며 검고 큰 두눈은 새별처럼 빛났다. 순간 나는 《아차!》 하면서 소리를 꽥 지를번했다. 아이는 영낙없이 형님을 빼닮았다. 나는 영화나 드라마 같은 일이 우리 집안에서 벌어지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하회를 기다릴수 밖에 없었다. 술잔이 몇순배를 돌고 나와 형수님이 손님들에게 술을 권하고 돌아오니 자리에 아이만 있고 그 녀자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혹시 다른 상에 술을 부으러 가지 않았나싶어 다른 상을 훑어보았는데 녀자는 보이지 않았다. 아마 화장실에 갔을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퍼그나 지나도 녀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제야 나는 대뜸 십중팔구는 녀자가 아이를 우리에게 맡겨버리고 사라진것이라고 생각했다. 순간 나는 눈앞이 캄캄했다. 아이는 음식상에 마주앉아 고사리같은 손으로 물고기 눈알을 빼먹기에 여념이 없었다.

《엄마는 어디 갔어?》

나는 아이한테 물었다.

《쉬― 하러 갔어요.》

아이는 인츰 대답했다. 그 녀자가 식당부근에 있을것 같아 급히 동생더러 살펴보라고 했다. 20분후 동생이 혼자 돌아왔다. 손님들이 다 가고 우리 집 식구들만 남았다. 그제야 아이가 엄마를 찾더니 울기 시작했다. 여럿이 아이를 달랬지만 막무가내였다. 아이를 맡기고 갔으면 꼭 생년월일이라도 어딘가에 밝혔을것이다. 나는 아이의 호주머니를 뒤졌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점점 미궁에 빠졌다. 이 시각 사망된 형님이 미웠다. 그처럼 정직하고 가정에 충실한 형님이 어쩜 이런 불미스러운 일을 저지를수 있단 말인가? 일은 누가 저질러놓고 똥집은 누가 달아야 하는가.

그러고보니 우리는 여직껏 그 녀자의 목소리를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그 녀자는 한번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렇다면 벙어리인가? 형님이 진짜 벙어리녀자하고 관계하여 아이까지 낳았다면 이건 보통사건이 아니기때문이다. 나는 혼돈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며 도저히 헤여나올수 없었다. 세상이 아무리 열려있다고 해도 이처럼 자극적인 충동을 받기는 난생처음이였다. 아이는 계속 엄마를 찾으며 울었다. 그렇다고 신고할수도 없고 데리고 갈수도 없는 상황이였다. 나는 화가 치밀어 아우성을 치고싶었지만 억지로 참으면서 이 난국을 풀어나가야만 했다. 그러나 뾰족한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단단히 마음을 먹은 나는 형수님과 사돈들을 먼저 보냈다. 사돈측에서도 삼촌인 내가 알아 처리하라는 눈치였다. 나는 안해와 동생들을 불러놓고 신고할수 밖에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먼저 아이를 가까운 파출소에 맡기려고 막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그 녀자가 식당안으로 헐금씨금 달려들어오며 허리를 굽히며 사죄했다.

《죄송합니다. 정말 미안해요.》

순간 나는 녀자가 벙어리가 아니라는것을 확인했다. 큰 짐을 부리워놓은듯 저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도대체 누구길래 남의 상가집에 와서 개판을 치는거야?》

성질이 우락부락한 막내동생의 입에서 끝내 곱지 않은 말이 터져나오고야말았다.

《미안합니다. 갑자기 사고가 생겨서… 정말 죄송합니다.》

사고라는 말에 우리는 침묵을 지켰다. 아이는 엄마가 오자 인츰 울음을 딱 그쳤다. 나는 이때라고 녀자에게 엄숙하게 물었다.

《사실 우리는 그쪽 신분을 잘 모르는데 대체 우리 형님과 어떤 사이였소?》

녀자는 갑자기 얼굴을 붉히며 나를 쳐다보더니 잠간 머뭇거렸다. 순간 나는 피치 못할 사이였다고 짐작했다. 더 지꿎게 묻고싶지 않았다. 사실 나는 그 녀자의 진실을 알고싶지 않았고 앞으로는 다시 만나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뿐이였다. 우리는 식당에서 자리를 뜨려고 서둘렀다. 그때 녀자가 나를 불러세웠다.

《저기요― 할 얘기가 있는데 좀 조용한 곳에 가시면 안되겠어요?》

나는 기어이 올것이 왔구나 생각하며 녀자의 청을 거절할수 없었다. 그 녀자도 집안의 제일 큰 어른이 나라는걸 알고 청을 드는것 같았다.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부근의 다방으로 향했다. 우리는 다방에서 마주앉았다.

《뭘 마시겠어요?》

녀자가 먼저 나에게 물었다.

《난 랭커피 한잔…》

《저기요. 여기 랭커피 두잔 주세요.》

《엄마, 나두…》

《그리고 아이스크림 하나 더 주세요.》

이때 녀자의 핸드폰이 울렸다.

《잠간만요.》

녀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한켠에서 전화를 받았다. 나는 이때라고 아이에게 슬쩍 물었다.

《너 이름이 뭐니?》

《수민이얘요.》

《무슨 수민이지?》

《김수민!》

성이 김가라는 소리에 나는 가슴에서 널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듯했다. 예상하지 못한건 아니지만 정작 아이의 성까지 확인하니 앞으로의 일이 걱정되였다. 그 녀자가 이제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하기보다 아이에 대한 《폭탄선언》을 할가봐 더럭 겁이 났다. 아이는 김씨가문의 아이니깐 우리더러 책임지라고 하면 어쩔수 없는 현실이였다. 이때 카운터를 보던 접대원이 랭커피 두잔과 아이스크림을 상우에 내려놓았다. 녀자는 통화를 마치고 다시 자리에 와서 앉았다.

《수민아, 저쪽에 가서 먹으며 놀지.》

수민이는 알았다는듯 제꺽 자리를 피했다.

《저― 커피 드세요.》

목안이 달아오른 나는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커피를 큰 모금으로 마셨다.

《원래는 이 얘기를 영원히 하지 말자고 했는데요…》

녀자는 잠간 머뭇거리더니 분홍빛 립스틱을 바른 입술에 커피잔을 갖다댔다.

《하지 않아도 되는 얘기라면 굳이 할 필요는 없겠는데…》

들어서 좋을것 없는 얘기가 뻔한지라 나는 차라리 하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인츰 그 자리를 뜨고싶었다.

《그렇지만 하지 않으면 영원히 못할것 같아서 오늘은 기어이 하기로 마음을 먹었거든요.》

녀자는 마음을 굳게 먹은듯 얼굴에 엄숙한 기색을 띠우고있었다.

《바로 5년전의 일이였어요.》

녀자는 드디여 말문을 열었다.

《그러니까 제가 스물다섯살때였지요. 우리 집은 연길 동쪽 변두리에 있었어요. 그때 제가 미용강습반을 다니다보니 밤늦게 집으로 갈 때가 많았어요. 그날도 미용학습을 끝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고있었어요. 가로등도 없고 집으로 가는 골목은 늘 어두웠어요. 그냥 그랬듯이 제가 정신을 도사리고 어두운 골목을 지날 때였어요. 갑자기 어떤 괴한이 와락 덮치면서 저의 입을 막았어요. 그리고는 저를 끌고 가더군요. 저는 막 소리를 질렀지만 괴한의 손에 막힌 입은 아무 소용이 없었어요. 괴한은 소리를 치면 죽인다고까지 위협하더군요. 저는 어찌할바를 몰랐어요. 제발 놔달라고 사정했어요. 돈은 얼마 안되지만 몽땅 가지라고 했어요. 하지만 괴한은 돈을 보고 그러는 강도가 아니였어요. 그때 연길교외는 비닐하우스가 많았어요. 괴한은 어느 하우스옆으로 저를 끌고 가서 저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어요. 저는 젖먹던 힘까지 다해 발악했어요. 제가 하도 이악스레 발악하니 괴한은 주먹으로 저를 한매 치더군요. 그다음 일은 잘 생각이 나지 않았어요.》

녀자는 얼굴이 굳어지면서 말을 멈추었다. 나의 가슴에서 또 한번 얼음장 같은것이 떨어졌다. 녀자가 말하는 그 괴한이 형님이란 생각까지 미치자 더는 들을 자신이 없었다. 만약 그 괴한이 정말 형님이면 나는 수치심으로 한평생 죄롭게 살아야 하기에 차마 그 녀자를 쳐다볼수 없었다.

《제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괴한이 저의 바지를 다 벗기고 팬티를 막 더듬는 순간이였어요. 나는 두손으로 팬티를 움켜쥐고 뻗쳤어요. 괴한의 주먹이 또 한번 저의 머리를 쳤어요.》

녀자의 눈에서 눈물이 당금 쏟아질것 같았다.

《이튿날 너무 큰 충격을 받은 저는 미용강습반에 가지 못했어요. 온종일 집에 붙박여있다가 바람이라도 쏘이려고 저녁때쯤에야 나왔는데 동네사람마저 보기 싫더군요. 제가 다시 집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앞에서 웬 아저씨가 오는것이 아니겠어요. 그 아저씨를 보는 순간 저는 그만 아― 하고 소리를 지를번했어요. 바로 어제저녁에 저에게 덮쳤던 그 사람이였어요.》

나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싶은 심정이였다.

《저는 그 길로 파출소에 가서 신고했어요. 그렇게 그 사람은 잡히고말았어요. 그런데 후에 알고보니 그 사람은 죄인이 아니라 오히려 저의 은인이였어요.》

이건 또 무슨 소린가? 나는 점점 미궁에 빠져들어갔다. 그녀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때 마침 그 아저씨가 지나가다가 제가 당하는것을 목격했대요. 그 아저씨는 그 몸으로 괴한과 뒹굴며 싸우다가 쓰러졌대요. 제가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때 그 아저씨가 저를 일으켜 앉히더군요. 저는 그때라고 그 아저씨를 콱 밀쳐버리고 줄행랑을 놓았지요.》

《그러니까 그 사람이 우리 형님이였다는 얘긴가?》

《맞아요. 그런 일엔 선뜻 나설 사람들이 없겠는데 아저씨는 그 불편한 몸으로 상처를 입으면서 괴한과 싸운걸 생각하면…》

녀자는 동그스름한 어깨를 달싹이며 막 흐느껴 울었다. 나는 상우의 위생종이를 그 녀자에게 건네주었다.

사람이 살다보면 상대방의 실수를 보고도 못 본척하고 지나쳐버릴 때가 종종 있다. 그러나 형님은 그런 일에 《젬병》이였고 상대방의 잘못을 모르는척해줘야 하는 경우에도 너무 정직한것이 탈이였다.

《그런데 형님이 운명한걸 어떻게 알고 병원에 왔댔소?》

《일은 참 공교롭게 됐어요. 그날 출근했다가 물건을 두고 갔기에 다시 집에 가지러 오다가 선생님이 피를 토하는 그 아저씨를 막 업고 택시를 타는것을 보았어요. 그래서 저도 택시를 잡아타고 병원에 갔지요. 어쩌면 아저씨가 마지막일것 같은 예감이 들면서 생전에 고맙다는 인사는 못했지만 마지막 길이라도 바래주고싶었어요. 만약 제가 그때 강간이라도 당했더라면 오늘과 같은 이런 행복이 없었을거예요. 그리고 이제 가정도 있고 아이도 있으니 그 일을 숨기면 제 자신에게마저 용서가 될것 같지 않아서 오늘 이렇게 털어놓는거예요.》

《정말 고맙소. 쉽지 않은 이야기를 해줘서…》

나는 문득 한가지 궁금한것이 있어서 물었다.

《그런데 아까 사고라는건 무슨 소리요?》

《제가 전화를 받으면서 창문으로 내다보니까 어떤 할아버지가 길가에 쓰러져있더군요. 그런데 숱한 사람들이 지나가면서도 누구 하나 상관하려 하지 않더군요. 그래서 제가 나갔지요. 병원에 다녀오느라고 늦었던거얘요.》

《참 좋은 일을 했구만.》

《선생님의 형님분이 저를 도와준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걸요.》

나는 녀자의 얼굴을 찬찬히 쳐다보았다. 녀자는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그녀의 얼굴에서 형님의 얼굴이 얼핏 떠올랐다. 피딱지가 더덕더덕 앉은 형님의 얼굴이였다.

그날은 형님의 생일이였다. 내가 형님의 얼굴을 보고 놀란것은 그날 저녁녘이였다.

《아니, 얼굴은 왜 그렇소? 무슨 일이 생겼소?》

《저네 형님이 또 남의 일에 쓸데 없이 삐치다가 얻어맞아 저렇게 됐소. 제 몸도 변변치 못한데 남의 일에 나서다니 정말 답답하오. 며칠째 제 돈을 팔면서 치료하구…》

형수님의 바가지 긁는 소리였다…

나는 그 녀자와 마지막 인사를 하고 다방을 나섰다. 길에는 차량과 사람들로 붐비였다. 차량에서는 검은 연기가 뿜겨져나오고 누군가 술을 마시고 꽃밭에 열물을 토해낸다. 나는 걸으면서 북쪽하늘을 쳐다보았다. 멀리 화장터굴뚝이 보였다. 화장터굴뚝에서는 하얀 연기가 피여오르고있었다.

 

                                                                  

 /김정권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7-04-19 11:15:52 시가문학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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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치의 비밀 인기글 소학교때 선생님은 박호구를 맨 구석에 앉혔다. 애들은 박호구를 《방귀》라고 불렀다. 강의시간만 되면 방귀를 소리높이 뀌기때문이다. 어느 땐가 방귀소리가 너무 요란하여 곁에 앉은 녀자애가 놀라 새된 비명까지 지른적 있다… 그는 녀자애들만 보면 실실 웃었다. 남자애들은 그를 《변태》, 《머저리》라고 놀렸다. 왜서 박호구는 녀교원과 녀자애들만 보면 좋아할가? 그는 집에서도 엄마를 좋아한다. 아버지는 그저 아들의 존재를 잊은듯 수걱수걱 일만 했다. 엄마는 그가 학교에서 애들한테 얻어맞고 빌빌거리며 집으…(2016-09-21 10:43:23)
후레자식 인기글 심하게 뒤척이다 겨우 잠든 밤, 복잡한 꿈들이 하나 둘씩 찾아와 내 지난날들에게 안녕을 물었다. 필림의 일부가 잘렸다 이어진 그 부분에서, 나도 모르게 조금씩 잃어버린 그 부분에서 《제발, 기억해줘 우리를.》 누군가의 목소리가 한겨울에도 용을 쓰며 가지끝에 매달려있는 가녀린 잎새처럼 애원했다. 나는 벌떡 일어났다. 그러지 않으면 심한 가위에 오래동안 눌릴것만 같았다. 《우리라…》 아직 동도 트지 않은 하늘을 바라보면서 나는 여유롭게 커피잔을 입가로 갖다댔다. 랭장고에서 꺼낸 차디찬 캔커피를 굳이 …(2016-07-27 10:51:41)
거 위 인기글 권씨는 신새벽에 일어나 거위의 먹이를 장만했다. 언 배추를 길쭉길쭉하게 썰어서는 싸래기가 다분하게 섞여있는 벼겨에다 버무렸다. 그리고는 가마에서 보송보송 끓고있는 물을 한바가지 퍼서 거위먹이에다 쏟고는 다시 차분차분하게 휘저었다. 먹이에 김이 서리면서 들큼한 냄새가 후각을 찔렀다. 권씨는 먹이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수거위 한마리가 거만하게 뚱기적거리면서 《왝―왝―》거리더니 먹이그릇에 무작정 덮쳤다. 그리고는 넙죽한 주둥이로 걸쭉한 먹이를 먹어댔다. 곰상스레 먹으면 오죽 좋을가. 언제봐도 막무가내…(2016-07-06 10:39:54)
거꾸로 그려진 집 인기글 친구 은숙을 마중하여 그녀의 트렁크를 끌고 주차장으로 걸어가는데 등뒤에서 누군가 《이모》하고 불렀다. 풋사과가 설겅거리며 씹히는듯한 애된 남자의 목소리였다. 《아는 사람이냐》는 눈길로 은숙이가 내 뒤를 턱짓해보였다. 거기에는 멜가방을 비스듬히 진채 한손으로 검은색 짐가방 손잡이를 잡고있는 야구모자의 어린 청년이 서있었다. 캡이 눈두덩까지 눌러씌여져있었지만 나는 인츰 아들 유현이랑 한반 친구인 준빈임을 알아보았다. 《그래, 준빈이구나. 니가 공항엔 웬 일이냐? 방학이라 어디 려행 …(2016-05-11 10:02:22)
목 신 인기글 상석이가 연길로 이사왔다는 말에 찬길이는 하마트면 “꿱―” 하고 게사니소리를 지를번했다. 떼꾼해진 표정에 삽날처럼 회좁은 하관이 더 길죽해보였다. 할리우드 공포영화에 나오는 흡혈귀거나 공상영화에 나오는 좀비들의 이야기가 아닌 이상 죽은지 일년이나 된다는 상석이한테 도저히 그런 렵기적인 일이, 상식밖의 일이 일어날리가 만무했기때문이였다. “ㅆ바, 어따 대고 이발에 땀이 나는 소리를…” 갓 완공된 몽환가원(梦幻家园)의 조경(造景)사로 돌아치고있는데 범철이가 왕청(汪淸)에서 올라왔다고 했다. 그동안 …(2016-03-23 14:16:26)
《아부지―》 인기글 한여름, 남산언덕배기에 올라서면 시원한 송림이 맞아주고 그 한쪽 끝자락에 있는 남새밭도 보인다. 깔끔하게 꾸며진 남새밭이다. 파랗게 쪽쪽 줄을 선것은 부추요, 곱슬곱슬 퍼진것은 상추요, 넝쿨사이로 빨갛고 파란것은 도마도요… 가시나무가지들을 엮어서 빙 둘러 바자까지 쳤고 북쪽에는 이깔나무로 원두막도 지었다. 아들덕에 도시에 들어온 박령감이 아들네를 위해 꾸민 남새밭이였다. 지금 아들은 한창 잘 나가고있다. 말단정부인 향에서 현으로, 또 현에서 지구급 시정부로… 한창 떠오르는 아침 해님이였다. 박령…(2016-01-06 11:00:29)
왕삼이네 식구들 인기글 뒤동산에 붉디붉은 진달래꽃이 만발하던 어느날, 왕삼(王三)이네 식구들이 우리 동네에 이사를 왔다. 그때 나는 소학교에 다녔고 아버지는 동네에서 촌장이였는데 산동쪽에서 왔다는 왕삼이네 일곱식구들을 받아들였다. 당시 동네의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지만 아버지는 직접 향(공사)정부로 달아다니면서 끝내 이사수속을 해주었다. 후에야 알게 되였는데 동네 몇몇 사람들이 구리덩이를 팔러 산동쪽으로 나갔다가 깡패들의 칼에 찔려 그 당시 촌의 전부 재산이나 다름 없는 구리판매돈을 몽땅 털리우게 되였을 때 바로 왕삼이…(2015-12-09 11:00:06)
나의 상급 국장어른 인기글 퇴근종이 울리는 그 순간 탁상전화벨이 울렸다. 나는 퇴근하려다 말고 송수화기를 들었다. 뜻밖에도 국장어른의 전화였는데 나더러 볼일이 있다면서 자기 사무실로 오라는것이였다. (과연 안해의 수작이 은을 낸것일가?) 문득 나의 뇌리를 스친 생각이다. 어제저녁 안해가 봉투에 현금 2만원을 넣어가지고 나의 상급인 국장어른을 찾아갔었는데 그 소행이 과연 효과를 보았단 말인가. 금전만능이라고 돈으로 해결 못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하긴 대학 본과를 졸업하고 국장어른의 수하에서 사업한지도 어언 3년이란 세월이 흘…(2015-11-25 10:24:30)
우울증 인기글 그녀의 집은 엘레베터가 있는 고층아빠트이다. 2층집 남향켠의 창으로부터 부서져내리는 하얀 달빛으로 침실은 유난히 차가운 기운이 감돈다. 하지만 때아닌 10월초의 싸늘한 날씨와는 달리 아담한 침실은 마냥 포근하다. 그 창문밑에는 시몬스쌍침대가 널직하게 자리잡고있고 침대머리에 놓인 결혼사진액틀에서 례복 입은 남녀가 다정하게 웃고있다. 맞은켠 벽중심에 부착되여있는 텔레비죤에서는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부드러우면서도 조금은 힘있게 울려나오고있었다. ―어제저녁, 초중 2학년에 다니고있는 한 녀학생이 12층 …(2015-10-14 10:52:12)
《지팽이》 인기글 수면우에서는 제비들이 낮게 날아다니며 물을 찬다. 제비들이 물을 차는것은 덥거나 몸을 씻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리고 심심해서 장난을 치는것은 더구나 아니다. 그것은 물개미나 물방아, 물거미와 같은 곤충을 잡아먹기 위해서이다. 간혹 물잠자리도 눈에 띄면 마치 쌕쌕이마냥 급강하며 냉큼 물어삼킨다. 제비의 물 차는 동작은 그 우아함이 유명한 발레무용가도 무색해할 정도이다. 원철이는 오늘도 황암동 천연늪에 와서 낚시질을 한다. 원철이에게는 주말이 따로 없다. 날마다 주말이였다. 그도 그럴것이 이미 퇴…(2015-09-23 13:26:00)
존엄 인기글 고막을 찢는듯하던 공기압축기의 동음이 딱 그쳤다. 60분 오찬시간이다. 로동자들은 필사적으로 움직이던 몸을 풀며 앞치마와 장갑을 벗어놓고 웃층으로 통한 계단으로 향했다. 식사를 빨리 해야 그만큼 담배를 피우거나 커피를 마실 금싸락같은 시간을 더 얻을수 있기에 누구나 분초를 다툰다. 식당에서 렬을 지어 서서히 움직인다. 순서대로 놓여있는 식판과 수저를 들고 밥과 반찬을 담고 김치와 국그릇을 챙겨들고 행렬에서 빠져나간다. 그날 오찬의 반찬은 치킨이였다. 배추김치와 함께 볶은 닭고기였다. 아무튼 …(2015-07-01 14:4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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