吉林省委朝鮮文机关報

[항일투사들](52) ―서광해, 오옥광, 장흥덕 > 민족종합

본문 바로가기

력사 | [항일투사들](52) ―서광해, 오옥광, 장흥덕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영자| 작성일 :21-01-19 11:54| 조회 :87| 댓글 :0

본문

 

[력사]우리 민족의 항일투사들―서광해, 오옥광, 장흥덕


편집/기자: [ 심영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1-01-18 13:44:10 ] 클릭: [ ]


제1편 동북항일련군 장교

동북항일련군 제6군―사급 이상 장령

서광해(徐光海, 1907―1938): 동북항일련군 제6군 제1사 정치부 주임

원명은 서병인(徐炳仁)이고 1907년에 조선 경상남도 밀양군에서 태여나 1913년에 료녕성 심양, 개원으로 이주했다가 1926년에 흑룡강성 탕원현 오동하로 이주했다. 1930년 가을, 감조감식을 반대하는 대중투쟁에 참가하였고 중국공산당에 가입했다. 9.18사변 후 중공탕원현위원회에서 조직한 화장선전대에 참가하여 탕원, 라북탄광, 금광, 및 가목사, 학강 등지에 가서 항일선전활동을 하였다. 1933년 7월, 중공탕원중심현위의 파견을 받아 ‘염라왕’ 의용군에 들어가 항일민족통일전선 사업 임무를 수행했다.

1934년 1월, ‘염라왕’부대에서 권총 두자루를 빌려 라북현 봉상진 자위단의 총 20여자루를 탈취했다. 10월에 탕원항일유격대가 결성되자 21명의 의용군을 이끌고 탕원유격총대에 입대하여 총대 부관이 되였다. 1935년 2월, 100명의 유격대원들을 이끌고 괴뢰군으로 가장하여 화천현 룡구에서 자위단의 무장을 해제하였다. 그 후 또 의란현에 있는 지주의 무장을 해제하였고 집현현 왕해촌에 있는 한간지주 하몽림을 체포하고는 가산을 몰수하여 가난한 농민들에게 나눠주었다. 1936년말에 동북항일련군 정치군사학교 제2기 학원 반장이 되였다. 1937년 2월, 동북항일련군 제6군 제1사 정치부 주임이 되였고 그 후 중공부금현위원회 서기, 중공하강(下江)특별위원회 상무위원도 겸하였다. 그 후 보청현 등지에서 항일구국의 도리를 선전하고 지방당조직을 도와 대중을 발동, 조직하였으며 지하항일정권의 수립을 지도하였다.

1938년 봄, 북만항일련군의 주력이 흑눈평원으로 진군한 후 하강에 남아있는 부대를 이끌고 송화강 남안에서 계속 유격투쟁을 진행하였다. 마덕산 사장이 희생된 후 6월에 부대를 이끌고 부금현 국강로에 있는 괴뢰경찰서를 야간 습격하여 일본 지휘관, 번역관 및 24명의 경찰을 포로하였고 7월에는 쌍산에서 적군을 매복습격하여 80여명을 소멸하였다. 1938년 11월 23일, 과회산 후방병원의 일군들과 부상자 20여명을 전이시키던 도중 보청현 장가요(张家窑)에서 위만군과 싸우다가 전사했다. (자료 출처: 《동북항일련군장령전》)

오옥광(吴玉光, 1909―1938): 동북항일련군 제6군 제4사 정치부 주임

조선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에서 태여나 1917년에 가족을 따라 길림성 화전현 대영구로 이주하였다. 당지에서 4년제 소학교를 졸업한 후 가족과 함께 할빈, 아성 등지에 가서 중학교를 다녔다. 중학교를 마친 후에는 주하현 삼툰에 가서 소학교 교원으로 있으면서 반일혁명활동에 참가하였다. 1930년 겨울에 온 가족과 함께 라북현으로 이사하여 농사를 지었다. 1932년 7월―8월 사이 중공요하중심현위에서 꾸린 군정강습소를 졸업한 후 라북에 돌아가 혁명활동을 하다가 1933년말 탕원항일유격대에 입대하여 청년대 반장이 되였다.

1934년말과 1935년초, 유격총대에 ‘민생단’ 사건이 발생하여 참모장 장추(리인근) 등이 비참하게 살해될 때 배경천, 마덕산, 최청수 등 조선족들과 함께 련루되여 고문을 심하게 받아 하마트면 목숨을 잃을 번하였다. 1935년 12월 중순, 탕원민중반일유격총대가 동북인민혁명군 제6군으로 개편되자 제4퇀 정치부 주임이 되였고 동북항일련군 정치군사학교 제1기 학원생이 되였다. 1937년 9월, 동북항일련군 제6군이 재편성되자 제4사 정치부 주임이 되였다. 1937년 2월 2일, 탕원현 격절하밀영에서 소집된 군정련석확대회의에 참석하고 회의 후에는 군장 겸 제4사 사장인 대홍빈과 함께 제4사의 4개 퇀을 이끌고 모아산을 중심으로 탕원 서부지역에서 활동하면서 모아산밀영에 자리 잡은 중공북만림시성위원회 기관과 군 재봉대를 망라한 제6군의 후방기지를 보위하는 과업을 수행하였다.

1937년 7월, 제6군 모아산밀영에서 열린 중공북만림시성위원회 확대회의 기간에 군 재봉대 녀전사 리계란과 결혼식을 치렀는데 주보중이 사회를 맡고 조상지가 주례를 섰다(리계란은 탕원항일유격대 시절부터 함께 해온 전우로서 2008년 1월 8일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으며 림종 시 유언에 따라 골회를 오옥광과 함께 합장하고 기념비를 세웠다). 요하현 소가하에서 있은 한차례 전투에서 전사했다. (자료 출처: 《흑룡강항일투쟁인물록》)

장흥덕(张兴德, 1909 ― 1939): 동북항일련군 제6군 제2사 정치부 주임

1909년에 조선 경상남도에서 태여나 1926년에 흑룡강성으로 이주하였다. 1928년에 최석천이 오동하에서 꾸린 야학에서 공부하면서부터 혁명사상을 키웠다. 1930년에 최석천 등이 꾸린 군사훈련반에 참가하였고 가을에는 오동하 추수폭동에 참가하였으며 그 해에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다. 그 해 12월, 류동진(柳东振)을 협조하여 공청단탕원현위원회의 결성을 도왔다. 1931년에 공청단탕원현위원회가 설립되자 조직, 선전 사업을 담당하였다. 그 해 겨울, 현당위원회에서 조직한 화장선전대에 참가하여 탕원지역의 여러 향과 촌에서 항일 선전 및 강연을 진행하였다.

1934년 겨울, 탕원반일유격대에 입대하여 당지부 서기가 되였다. 1935년 4월, 잠시 유격대를 떠났다가 1936년 6월 동북인민혁명군 제6군 제3퇀 정치부 주임이 되였다. 1937년 2월에는 동북항일련군 제6군 제2사 정치부 주임이 되였다. 제2사 사장 장전복(张传福)이 료양을 하자 부대를 이끌고 굉극력(宏克力), 대래강(大来岗), 수곡류구(水曲柳沟), 화룡구(火龙沟) 일대에서 유격전을 벌렸다. 1938년 봄, 보급물자의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부대를 지휘하여 로등산(老等山)에서 황무지를 개간하여 20여헥타르의 밭에 옥수수를 심었다. 그 해 10월, 동북항일련군 총정치부 주임 리조린의 결정에 따라 제11군 제1사 정치부 주임으로 파견받아 하강지역에 남았다.

1939년 6월, 제11군 제3려를 이끌고 라북현 삼간방에서 전투를 벌리던중 팔에 총을 맞고 어쩔 수 없이 강을 건너 쏘련으로 갔다. 몇개월간 치료를 받은 뒤 귀국길에 올랐는데 제11군으로 복귀하던 도중 라북 조흥진(肇兴镇)에서 적들을 조우해 싸우다가 전사했다. (자료 출처: 《흑룡강항일투쟁인물록》, 《동북항일련군장령전》)

/박문봉 

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민족종합 목록

Total 1,368건 1 페이지
민족종합 목록
[중국공산당100년](25)준의회의 전후 새 이야기 [중국공산당100년](25)준의회의 전후 새 이야기편집/기자: [ 리전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1-02-03 16:42:55 ] 클릭: [ ] 준의회의 기념관.귀주 준의는 북으로는 루산을 기대고 남으로는 우강과 린접해 있으며 산을 두르고 강을 끼고 있으며 지세가 험해 금북(黔北)의 요충지…(2021-02-08 13:55:06)
100세 생일 리남조할머니 "아직 몇십년은 문제없수다!" 100세 생일 리남조할머니 "아직 몇십년은 문제없수다!"편집/기자: [ 홍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0-10-16 10:25:29 ] 클릭: [ ] ▣ 리남조 가족사 중국 조선족 100년 력사 축소판▣ 할아버지 아버지 언니 항일투사10월 3일에 있은 ‘100세수연례’ 로부터 ‘지금은 100세…(2021-02-05 14:29:26)
[일본인상기33] 입은 재앙의 근원 인기글 [일본인상기33] 입은 재앙의 근원편집/기자: [ 안상근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1-02-05 10:37:26 ] 클릭: [ ] 중국 5대 10국시대의 정치가 풍도(馮道)는 오조팔성십일군(五朝八姓十一君), 즉 다섯 왕조에 거쳐 여덟 개의 성을 가진 열한명의 임금을 섬긴 재상이다. 그는 설시(舌詩)라는 제목의 시로 자기의 처세관을 후세인들에게 이렇게 남겼다.口是禍之門(구시화지문) :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요.舌是斬身刀(설시참신도) : 혀는 몸을 자르는 칼이로다.閉…(2021-02-05 13:56:12)
[중국공산당100년](23)중국공산당 력사에서의 5차례 통일전선 [중국공산당100년](23)중국공산당 력사에서의 5차례 통일전선편집/기자: [ 김가혜 ] 원고래원: [ 共产党员 ] 발표시간: [ 2021-02-02 15:03:02 ] 클릭: [ ]중국공산당은 중국공산당은 1921년에 창건되여서부터 지금까지 총 5차례의 통일전선을 겪었다. 당이 중국인민을 령도하여 신민주주의혁명과 사회주의건설을 진행하는 과정 중에 형성, 발전 및 장대해진 통일전선은 부동한 력사 시기에 부동한 임무, 내용과 특징을 가지고 있다.국민혁명련합전선1922년 7월, 2차 당대회에서는 《…(2021-02-04 11:06:38)
[중국공산당100년](22)채화삼: 중국공산당을 건립할 것을 명확히 제기한 첫 사람 [중국공산당100년](22)채화삼: 중국공산당을 건립할 것을 명확히 제기한 첫 사람편집/기자: [ 김가혜 ] 원고래원: [ 共产党员 ] 발표시간: [ 2021-02-02 11:13:04 ] 클릭: [ ] 그는 중국공산당을 건립할 것을 명확히 제기한 첫 사람이다. 생명의 마지막 순간까지 솔선수범 혁명을 위해 심혈을 …(2021-02-04 11:05:24)
[중국공산당 100년](21)|항미원조 끝까지 진행할 것이다 [중국공산당 100년](21)|항미원조 끝까지 진행할 것이다편집/기자: [ 김룡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1-02-01 09:21:16 ] 클릭: [ ] 지원군 전사들은 자신의 두손으로 구축한 “지하장성”에서 전투경험을 총화하였다.상감령전역 후, 중국인민지원군과 조선인민군이 정면 전쟁에…(2021-02-03 16:21:04)
[중국공산당 100년](20)습근평 총서기가 제기한 “중국의 꿈” [중국공산당 100년](20)습근평 총서기가 제기한 “중국의 꿈”편집/기자: [ 김룡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1-02-01 09:15:20 ] 클릭: [ ] 2012년 11월 29일, 습근평 총서기는 〈부흥의 길〉전시관을 참관하여 중요한 연설을 할 때 처음으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2021-02-03 16:18:57)
[중국공산당100년](19)중화인민공화국 국호 탄생기 [중국공산당100년](19)중화인민공화국 국호 탄생기편집/기자: [ 김영화 ] 원고래원: [ 인민정협보 ] 발표시간: [ 2021-02-02 11:38:40 ] 클릭: [ ] 1949년 10월 1일, 모택동 주석은 천안문성루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중앙인민정부가 성립되였다고 장엄하게 선포하였다. 그로부터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명칭은 새중국의 국호가 되여 세계에 울려퍼졌다. 이 국호가 확정되기까지는 많은 론란이 있었다. 특히 략칭 사용을 놓고 토론이 치렬했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이 모를 것이…(2021-02-03 16:17:24)
[중국공산당 100년](17) 제일 처음 공산국제 무대에 오른 중국공산당인 [중국공산당 100년](17) 제일 처음 공산국제 무대에 오른 중국공산당인편집/기자: [ 김영자 ] 원고래원: [ 중국공산당뉴스넷 ] 발표시간: [ 2021-01-28 16:33:09 ] 클릭: [ ] 1921년 7월 12일, 이날은 공산국제 제3차대표대회의 마지막 날이였다. 모스크바대극장 내 5000여개 되는 좌석은…(2021-02-03 16:15:56)
[대형련재]한락연의 발자취 따라(5) [대형련재]한락연의 발자취 따라(5)편집/기자: [ 최화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1-02-01 16:26:13 ] 클릭: [ ][대형련재]한락연의 발자취 따라(5)○ 김 동 수초혼(初婚)한락연은 1917년(19살)에 한마을 처녀 최신애와 결혼하였다. 당시 조혼이 류행이던 상황을 고려하면 19세…(2021-02-03 16:14:06)
[대형련재]한락연의 발자취 따라(4) [대형련재]한락연의 발자취 따라(4)편집/기자: [ 최화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1-02-01 15:50:26 ] 클릭: [ ][대형련재]한락연의 발자취 따라(4)○ 김 동 수‘3.13’에서 날개를1919년은 다사다난한 해였다.1919년 3월 1일 조선반도에서 ‘3.1’운동이 노도와 같이 폭발하…(2021-02-03 16:12:39)
[항일투사들](54) ―고원명, 김탁, 김품삼, 리일평 [력사]우리 민족의 항일투사들―고원명, 김탁, 김품삼, 리일평편집/기자: [ 심영옥 ] 원고래원: [ ] 발표시간: [ 2021-01-27 13:43:47 ] 클릭: [ ]제1편 동북항일련군 장교동북항일련군 제7군(요하반일유격대대, 동북인민혁명군 제4군 제4퇀, 동북인민혁명군 제4군 제2사, 동북항일련군 제7군)△ 하농공의용군1932년 10월 6명으로 구성된 권총대 결성1933년 4월 21일 요하로농의용군 편성1933년 5월 동북국민구국군 특무영 편성1934년 2월 3일 요하민중반일유격대대 설립…(2021-01-29 14:26:56)
[항일투사들](53) ―리석원, 리옥봉, 리운봉... [력사]우리 민족의 항일투사들―리석원, 리옥봉, 리운봉...편집/기자: [ 심영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1-01-27 13:30:54 ] 클릭: [ ]제1편 동북항일련군 장교동북항일련군 제6군―좌급 군관리석원(李石元, ?—1938): 동북항일련군 제6군 제1사 후근처 처장중공당원이고 동북항일련군 제6군 제1사 후근처 처장이며 1938년에 흑룡강성 보금현 칠성포에서 희생되였다. (자료 출처: 《흑룡강항일투쟁인물록》)리옥봉(李玉峰, ?—?): 동북항일련군 제6군 제1퇀 …(2021-01-29 14:25:03)
[중국공산당 100년](16) 등소평의 ‘북방담화’ [중국공산당 100년](16) 등소평의 ‘북방담화’편집/기자: [ 김영자 ] 원고래원: [ 중국공산당뉴스넷 ] 발표시간: [ 2021-01-28 16:05:59 ] 클릭: [ ] 1978년 9월 13일부터 20일까지, 등소평은 중국 당정 대표단을 인솔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성립 30주년 경축활동에 참가했다가 귀국한 후 북방지역에서 8일간 시찰했다. 료녕성에서 흑룡강성, 길림성에까지, 다시 료녕성, 하북성, 천진시를 돌아보면서 가는 곳 마다에서 보귀한 이야기를 남기였다. 선후로 본계시, 대경시…(2021-01-29 14:22:02)
[중국공산당 100년](15)중국공산당의 탄생은 <5.4>운동에서 시작되였다 [중국공산당 100년](15)중국공산당의 탄생은 &lt;5.4&gt;운동에서 시작되였다편집/기자: [ 김태국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1-01-26 10:03:57 ] 클릭: [ ] 1919년 1월 18일, 제1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27개 협약국은 프랑스 빠리 베르사유궁에서…(2021-01-29 14:21:11)
게시물 검색


Copyright © 2005 인터넷길림신문 all rights reserved. 吉ICP备07004427号

本社: 長春市綠園區普陽街2366號 Tel: 0431-8761-9812 分社: 延吉市新華街2號 Tel: 0433-253-6131

記者站: 吉林 (0432) 2573353 , 通化 (0435) 2315618 , 梅河口 (0448) 4248098 , 長白 (0439) 8220209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