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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이야기101]이케다 스미에(池田澄江)의 중국정(1) > 기획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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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이야기 | [백성이야기101]이케다 스미에(池田澄江)의 중국정(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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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영자| 작성일 :19-08-19 06:36| 조회 :1,29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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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기자: [ 안상근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19-06-05 10:47:56 ] 클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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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귀국자・일중우호회의 이케다 스미에(池田澄江) 회장.

1945년 8월 15일,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항복을 선언하였다. 패전 시, 중국에 있었던 155만여명에 달하는 일본인들은 철퇴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피난길에 태여난 아기들과 먼길을 이동할 수 없는 나이의 아이들을 살리려고 당지 고마운 중국인들에게 자식을 맡기고 떠난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 때 남겨진 아이들이 바로 오늘날의 ‘잔류일본인고아’들이다.

1972년, 중일관계가 정상화되면서 그들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였다. 1981년에 첫 잔류고아방일조사단이 륙친혈연조사로 일본을 방문하는 것을 시작으로 二零一八年 12월 31일까지 무려 2만 907명의 잔류고아와 그 가족들이 일본에 영주귀국을 하였다.

일전에 도꾜에서 만난 현재 중국귀국자•일중우호회(中国归国者•日中友好会)의 이케다 스미에(池田澄江) 회장이 바로 그들중의 한사람이다.

하필이면 내가 왜 쑈르번꾸이즈(小日本鬼子)일가?

1940년대말, 흑룡강성 목단강시에서 제일 번화한 유신(維新)시장 부근에 부모님 사랑을 유난히 받고 자라는 서명(徐明)이라는 녀자아이가 있었다. 7살 나던 해에 소학교 1학년생이였던 서명은 학교친구들 속에 끼워 영화관에서 항일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를 관람하게 되였다. 영화 속 일본병사들의 만행을 보면서 어린 서명이가 분노의 마음을 걷잡지 못하고 있는데 갑자기 머리에 뭔가가 날아왔다. 웬 영문인지 뒤돌아보는 순간 반급아이들이 서명이를 돌아가며 때리기 시작했고 심지어 얼굴에 침까지 뱉었다.

“일본놈새끼…”

“쑈르번꾸이즈…”

선생님이 달려와서 아이들을 말렸다. 선생님의 보호로 겨우 집에 돌아온 서명이는 울면서 엄마에게 물었다.

“내가 왜 쑈르번꾸이즈예요?”

헌데 엄마는 놀라지도 않은 채 그게 별명이라며 서명이를 두손으로 안아 주었다.

그 날 이후로 서명이는 웬지 자기를 보는 마을사람들의 눈길이 예상치 않은 것 같아서 늘 불안했다. 그러던 1953년 서명이가 여덟살 나던 해에 공안국에서 한사람이 서명이네 집에 찾아왔다.

“당신 딸이 일본애 맞습니까? 일본사람을 돌려보내야 한다는 정책이 나왔습니다.”

그 때 서명이의 신상에 대해 입 밖에 내지 않았던 엄마는 몇년이 지난 후에야 서명에게 진실을 알려주었다.

1945년 8월, 일본이 전쟁에서 패배한 후 그의 생모가 다섯 아이를 데리고 목단강에 있는 일본난민수용소에 피난을 가게 되였다. 피난길에 모유가 나오지 않아 안타까운 나머지 생모는 리씨 성의 목수를 찾아와서 무릎을 꿇은 채 제발 아이를 살려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 후 리씨 성의 목수는 당시 아이가 없었던 서명의 양부모에게 500대양(大洋:당시 류통되던 은화의 단위)을 받고 아기를 팔았다.

서명이가 아홉살 나던 해, 양부의 사업실패로 집안생활이 일락천장이 되였다. 빚 때문에 양부는 행방불명이 되였고 두 모녀는 그 때까지 겪어본 적 없는 생활난을 겪게 되였다. 생활난 뿐만 아니라 빚쟁이들의 시달림에 지칠 대로 지친 엄마였지만 일자무식이였던 자기와는 다르게 서명이를 키우려고 마음 먹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서명이의 학교공부를 중단시킨 적 없었던 엄마는 매일 서명이의 숙제가 끝나기를 기다려서야 잠자리에 들군 했다.

그런 엄마의 정성과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서명이였다. 어린 시절 영화관에서 ‘일본놈새끼’로 몰리우는 자기를 감싸주던 선생님을 보면서 늘 교원의 꿈을 키워왔던 서명이는 목단강사범학교를 졸업하고 해림림업국 홍기림장 서남차림장(西南岔林场)소학교에 배치받았고 그 곳 림장의 한 남성과 결혼하여 아이 셋의 엄마로 되였다.

서명의 마음속 한구석에는 늘 잊을 수 없는 한마디가 자리 잡고 있었다. ‘쑈르번꾸이즈’, 하필이면 내가 왜 일본사람 자식일가?

나는 누구일가?

1972년, 중일량국 국교 정상화가 실현되였다. 그 이듬해에 조직의 배려로 목단강 시내에 전근하게 된 서명은 집 천정에 붙여진 신문지에 박혀있는 ‘중, 일’이라는 두 글자에 자주 눈길이 가는 걸 어쩔 수 없었다. 소학교 때 남의 눈을 피하여 지구의에서 가만히 찾아보았던 ‘일본’이라는 나라가 궁금하기 시작했다.

오래동안 원망하면서 살았던 친부모가 대체 어떤 사람이며, 왜 자기를 버리고 갔는지 그것만이라도 알고 싶었다. 한편 양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할 것 같아서 조마조마한 마음을 어찌할 수 없었지만 또 한편으로 낳아준 부모를 찾아 온갖 고생을 겪으며 자기를 키워준 엄마에게 꼭 은공을 갚게 하고 싶기도 했다. 그는 엄마에게 솔직히 털어놓았다. 엄마는 즉시 서명이를 이끌고 옛날 살던 동네에서 좀 떨어진 리씨 성의 목수집으로 찾아갔다. 헌데 이미 다른 사람이 살고 있는 그 자리에는 친부모를 찾을 만한 단서가 남아있지 않았다.

1980년, 목단강을 방문한 한 일본기자가 서명의 사연을 기사로 발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혹가이도(北海道)의 요시가와(吉川)라는 한 로인으로부터 련락을 받게 되였다. 당시는 잔류일본인에 대한 조사가 다시 시작된 때여서 비슷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 서신거래가 시작되였으며 최후 확인이 필요한 잔류고아들이 일본을 방문할 때였다. 요시가와씨의 요청으로 서명이는 6개월간의 친척방문비자를 받고 1981년 7월 24일에 어린 세 아이를 데리고 일본으로 향했다.

혹가이도에 도착한 후, 친자확인수속을 밟는 과정에 확인증거가 부족하다고 여긴 일본정부는 DNA 감정을 요구했다. 석달이 지난 후 친자관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감정서를 받은 요시가와씨의 태도는 일변했다. 일조에 서명이가 가짜증거를 만들어낸 사기군으로 되여버렸다. 술에 절은 생활을 하기 시작한 요시가와씨가 매일 물건을 부시면서 그들을 내쫓았다. 기가 막혔다. 혼자몸이라면 어디라도 갈 수 있었지만 딸린 세 아이들을 데리고 어찌할 수도 없었다. 그대로 중국에 돌아가면 평생 ‘가짜일본고아의 자식’으로 손가락질 받으며 살아가야 할 세 아이의 장래가 걱정되였다.

우선 그 집에서 나오기 위해 서명은 혹가이도법무부에 찾아갔다. 헌데 중국법원에서 발급한 일본혈통고아증명서를 일본에서는 승인하지 않는다는 것이였다. 친자확인이 되지 않는 경우 강제송환되기전에 돌아가야 한다는 그들의 대답에 서명이는 억이 막혀 말이 나가지 않았다.

헌데 죽으라는 법은 없었다. 살길을 찾아야겠다고 궁리하던 끝에 일전에 친자확인 수속을 밟는 과정에 번역을 맡아주었던 번역사무소가 생각났다. 어렴풋이 들었던 빌딩 이름 하나로 택시를 타고 번역사무소를 찾은 그는 결국 그 분들의 도움으로 혹가이도 중국령사관을 찾아가게 되였고 자신의 처지를 알리게 되였다. 령사관에서는 요시가와씨에게 전화로 “서명은 아직 중국공민이다. 우리는 우리 공민을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다. 서명이를 털끝 하나 다치기만 하면 우리는 당신을 용서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고 한달 동안 거주할 수 있는 집도 마련해주었다.

혹가이도 중국령사관 일군들의 도움으로 1981년 12월 17일에 도꾜에 도착한 서명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앞길이 막막하여 며칠 동안 거리를 방황하였다.

한해도 막가는 어느 날 밤, 도꾜의 샨데리야 불빛 아래에 안데르쎈 동화속의 <성냥 파는 소녀>처럼 가냘픈 모습들이 비춰졌다. 아이 셋을 거느린 일본인잔류고아의 불쌍한 모습이 12월 22일의 《아사히신문》 기자의 사진보도로 전국에 알려지게 되였다.

‘서명사건’은 일본을 들썽했다. 사쿠라공동법률사무소의 가와이 히로유키(河合弘之)변호사가 서명을 돕겠다고 자원적으로 나섰다. 하여 1982년 6월 2일, 서명은 친부모를 확인하지 못한 채 일본국적을 가진 첫 잔류고아의 한사람으로 되였다.

37년을 서명으로 살았던 그는 자기를 성심성의껏 도와준 번역일군의 성인 이마무라(今村)의 성을 따르고 양부모가 지어준 명(明)자를 남긴 이마무라 아키코(今村明子)로 호적을 올리게 되였다.

/길림신문 일본특파원 리홍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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