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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구술시리즈-문화를 말하다 ](38) 중국조선족문화 처녀지를 개척하던 나날 > 기획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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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 [대형 구술시리즈-문화를 말하다 ](38) 중국조선족문화 처녀지를 개척하던 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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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영자| 작성일 :20-02-14 15:10| 조회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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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38]중국조선족문화 처녀지를 개척하던 나날


편집/기자: [ 김청수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발표시간: [ 2020-02-14 10:46:51 ] 클릭: [ ]

 

—중화인민공화국 창립 70돐 기념 특별기획-[문화를 말하다-38](채영춘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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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명한 아동문학작가 채택룡의 부분적 작품집.

아버님은 1945년에 광복이 되여서부터 1950년까지 《연변일보》의 전신인 《인민일보》,《길림일보》, 《한민일보》,《동북조선인민보》에서 편집기자를 하셨어요. 《연변일보》가 1948년에 창간되였으니 아버님은 《연변일보》 창립초기 터전을 닦을 때의 창업자의 한분인 셈이지요.

이 시기, 그러니까 정확히 1947년 성인가사 〈베짜기노래〉,〈새아리랑〉을 발표하셨어요.

그때는 채택룡과 작곡가 허세록 선생이 창작파트너관계가 형성되기 전이였지요. 허세록선생이 《동북조선인민보》에서 우연하게 〈베짜기노래〉가사를 보게 되였거든요.

그 당시만 해도 연변에는 자체로 창작한 노래가 거의 없어 해방전 노래가요나 외국 명곡에 가사를 붙여 부르던 세월이였대요. 바로 그때 《동북조선인민보》에 가사〈베짜기노래〉가 실린 것이지요.

언어사용이 대중적이면서 내용전달이 잘 되고 운률이 딱 잡혀있으면서 민족적인 정서가 짙어 보는 순간, 완전히 매료되였다고 허세록 선생님이 말씀하시더라구요.

채택룡이 누군지도 모르고 밤을 패가며 가사에 곡을 부쳤는데 완전히 항간에서 대중들이 제일 즐겨부르는 노래로 된 것이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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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택룡 작가의 창작 노트.

그것이 1947년도인데 제일 먼저 노래를 부른 가수가 방초선이였어요. 나중에 레코트판에도 들어가고 했는데 1954년도에는 전국대중가요평의에서 2등상을 탔지요. 그러니 연변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중국조선족가운데서 제일 높은 상이였지요. 그번 평의에서 곽말약선생이 작사를 한 가요가 1등상을 탔다고 들었어요. 상을 타고 안 타고를 떠나서 〈베짜기노래〉는 50년대, 60년대에 항간에서 제일 류행된 조선족대중가요였던 것이였지요.

저의 어머니도 가끔 집에서 흥얼흥얼 하며 그 노래를 불렀어요. 어머니에게 무슨 노래인가고 물었더니 “너 아버지 지은 노래다.”고 하는데 후에 가수들이 부르는 걸 들으니 좀 틀리더라구요. 아무튼 그 당시 어른들한테서 생활화됐던 노래였던 것만은 사실이였어요.

“봄이라 단비에 삼씨 뿌리여

새쫓고 김매며 고이 자래워

여섯자 키너머 가을을 하고

벗기고 실내여 베를 짜누나

에루화 좋구나…”

가사들이 베짜기를 하는 과정을 아주 생활화하여 잡아쥔 것이였어요.

“앞집에 며느리 뒤집에 처녀

베틀에 짱짱짱 바디질 소리

매끈한 실북이 드나들며는

칠승베 팔승베 휘감기누나”

……

베틀이 유물로 되여버린 오늘날 후대들에게는 너무 생소한 물건이겠으나 그때 서민들 생활이 그대로 담긴 노래여서 자연히 대중들의 깊은 사랑을 받은거지요.

지금도 로인들은 〈베짜기 노래〉라 하면 모두 흥얼거리지요. 저의 집에는 자그마한 찬장이 하나 있어요. 너무 낡아 80년대 초반에 제가 내다 버리려 했더니 어머님께서 못내 아쉬워 하는 눈치였어요.

“너 아버지가 〈베짜기노래〉를 짓고 상금받은 걸로 산 것이다.”

우리 집 ‘가보'에 들어갈 유물인 것이지요. 그래서 버리지 않고 그 후 수년간 보배처럼 모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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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사자 채택룡(우)과 작곡가 허세록(좌) 1997년 한국 방문길에서.

90년대 후반에 연변 로일대문학예술분야 원로들이 한국을 방문할 기회가 주어졌는데 서울에서 음악팬들과의 모임이 있었대요. 마침 채택룡, 허세록 두분이 한자리에 계셨는데 〈베짜기노래〉는 그 자리에서 모두가 열창하는 노래로 되였고 작사자와 작곡자도 신명나게 같이 어울리며 춤까지 추셨다고 하더라구요.

그러다가 1950년도에 지금의 《연변문학》, 그때 《연변문예》 초창기 편집비서로 전근하였어요. 그 당시 연변문예연구회라는 간판을 걸었는데 전원공서 동옥곤 전원이 친히 간판글을 써 주셨대요. 《동북조선인민보》 간판옆에 연변문예연구회 간판을 붙여가지고 《연변문예》를 꾸리기 시작한 것이지요.

후에 보니 연변문예연구회가 연변문학예술계련합회의 전신이더라구요. 초창기의 맴버들을 보면 신문사에서 온 채택룡과 김동구, 문공단에서 온 김례삼과 홍성도, 흑룡강성에서 온 김태희와 리홍규였대요. 그러니 연변문단을 개척하기 위하여 여러 곳에서 선두주자들이 모여온 것이지요.

이 시기에 아버님의 또 하나의 걸작 〈병아리〉(아동가요)가 탄생하지요. 이 가사는 1951년도에 발표되였는데 내가 후에 확인해보니 그것은 〈병아리〉와 이 아들 채영춘의 복합물이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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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기념 부인 박병선과 함께.

저희 아버지와 어머니는 두번째로 만난 분들이였어요. 그러니까 아버님은 전처가 사별한 후 어머니를 만날 때 아들 하나 딸 셋, 어머님은 딸 하나를 데리고 합쳤답니다. 두분이 만나서는 제가 장남이지요. 저희 아버님은 저를 그렇게 귀여워했답니다. 자택을 방문온 후배들을 보고 가끔 “너희들도 결혼하면 요런 아들을 낳으란 말이다.” 하면서 롱을 하기도 했다고 했어요.

어느 날,‘상발원’팔간집에서 사립문을 열고 문턱에 기대여 밖을 내다보는데 뜨락정원에서 어미닭이 병아리들을 끌고 다니며 모이도 쫓고 하는 것을 보게 되지요. 물끄러미 바라보니 귀여운 병아리들이 아들 채영춘이와 겹치고 업그레이드 되면서 어떤 환영이 생겼다는 것이였어요. “아이구 귀여운 것들…” 하며 귀여운 병아리와 갓난 아들이 합동영상으로 떠올라 동요〈병아리〉를 탄생시켰다고 하셨어요. .

모든 작품은 이렇게 뚜렷한 애증이 있게 되는 것이지요. 수십년 세월이 흘러도 〈병아리〉는 아이들이 계속 즐겨 부르는 가요로 되고 있어요. 여기에는 아이들의 마음을 끄는 언어표현이 크게 작용했다고 보여져요. 특히 아이들한테 어울리는 의성의태어 선택이 중요한 변수가 되지 않았나 생각해요.

삐악삐악 갓난병아리

아장아장 걸음익히네

요리조리 조약돌 넘어

깡충깡충 재주 피우나

〈병아리〉의 가사를 두고 저명한 작곡가 김덕균선생은 ”채택룡선생의 병아리를 보면 어데나 곡이 붙어있는 것 같아 손이 근질거려 못 참겠다.”고 말씀하셨어요. 〈병아리〉도 허세록선생이 보는 순간 매료된 가사였던거죠. 역시 허세록 선생의 히트곡으로 되였어요.

1952년도에 아버님은 또 룡정고중에 전근해 갑니다. 룡정고중하면 연변에서 제일 큰 조선족고등학교였어요. 건국 후 중국조선족교육의 요람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 같아요. 그러니 아버님은 건국 후 중국조선족교육의 터전을 개척하던 초창기의 교육자이기도 하지요. 그때 연변고중의 사자력량이 상당히 강했어요. 특히 조선어문 교원들로 조원섭, 박재한, 박상렬 등 우수한 교원들이 교편을 잡았는데 그분들은 후에 연변교육출판사 조선어문교재 편집의 선두주자가 되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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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연변 제1차민간문학사업일군회의 기념.

아버님은 1956년도에 다시 또 작가협회로 왔어요. 중국작가협회 회원, 중국작가협회 창작위원회 주임으로 되였던 것이였지요. 그리고 겸해서 《아리랑》 편집비서를 하기도 하였지요. 1957년-1958년에는 연변조선족자치주인민대표대회 2기, 3기 인대 대표로 당선되기도 하면서 문학예술분야의 중견으로 활약하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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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조선족자치주 제2기, 3기 인민대표대회 대표 증서.

비록 짧은 기간인 것 같지만 그 땐 잘 보낸 것 같았어요. 아버님은 북경에도 자주 다녀왔는데 문학회의에 갔다가도 늘 내가 좋아하는 크레용이며 색연필, 문방구를 선물로 사다 주셨어요. 그리고 공군모자랑 세발자전거랑 사다주어 동생과 함께 타고 마을을 돌아다니면 얼마나 신이 나고 행복했는지 몰라요. 동네 또래들은 그저 부러워 바라만 봤지요.

1958년 그때까지 아버님의 전반 인생행로를 추적해 보면 아버님은 역시 중국조선족의 초창기 교육, 언론, 문학에 골고루 정진하여 조선족문화 처녀지를 개척하는 가운데서 혼신을 이바지한 분이구나 하는 답이 나오더라구요.

1945년에 혁명사업에 참가하여 《연변일보》의 초창기 편집기자로 사업하였고 그후 《연변문예》의 정초자의 한분으로 활약했으며 1952년에는 조선족교육의 처녀지 개척에 투신하였죠. 1956년부터는 연변문단의 중견으로, 리더로서의 문학생애를 가꾸면서 1958년까지 강건한 행보를 이어왔었지요.

/길림신문 글 구성 김청수기자 영상 김성걸 안상근 김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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